국내 명문대학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한 K씨(33)는 요즘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청년 인턴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원래 미국 현지의 투자은행(IB)이나 경영컨설팅회사에 취업할 생각이었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신규 채용이 뚝 끊긴 탓이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으로 'U턴'할 기회도 엿봤지만 긴축경영 등으로 MBA 졸업생 수요 자체가 사라져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스카이(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주요대학 출신들은 물론이고 해외 MBA졸업생 등 취업시장에서 '블루칩'으로 통하던 인력들도 갈 곳이 없어 떠돌고 있다. 단숨에 고액 연봉을 거머쥘 수 있는 일자리로 직행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 반면 이들이 납득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는 현저히 줄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고시(高試) 또는 공무원 채용시험을 치면서 부모의 지원으로 버티는 고학력의 장미족(장기 미취업족)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능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무작정 기다리거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장만 찾으려 하기보다는 눈높이를 낮춰 벤처기업이나 소규모 전문회사 등에 취업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연봉 등 처우가 당장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적성에 맞는 회사에서 직무 경험을 쌓은 뒤 차차 몸값을 높여가라는 얘기다.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스포티즌(대표 심찬구)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 70억원,대졸초임 2000만원의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국내 명문대 출신과 유학파들이 실제로 많이 일하고 있다. 26명의 임직원 중 해외대학 석사 출신이 3명,'SKY'대 출신이 사장까지 포함해 13명이다.

8년 동안 사법시험에 매달리다가 2004년 이 회사에 들어왔다는 임우택 전략기획팀장(35)은 "고시에만 매달렸다면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짜릿한 재미를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팀장은 일하는 재미에 야근을 밥먹듯이 했고 과로로 폐렴에 걸리기까지 했다. 성실한 근무와 참신한 아이디어,깔끔한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인정받아 회사 내 서열 3위인 전략기획팀장으로 승진한 그에 대해 심찬구 사장(39)은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열정을 바칠 각오가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회사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해 즉석에서 채용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3년간 일했던 박씨(34)는 근무 경험을 토대로 MBA에 지원했고 이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맥킨지에 취업해 과장급에 해당하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박씨는 "실무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MBA만 다녀왔다고 채용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며 "처음부터 유명하고 급여가 좋은 회사만 찾아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젊을 때는 회사 규모를 가리지 말고 부딪쳐 보면서 재능도 살리고 몸값을 올릴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