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 · 사 · 민 · 정 비상대책회의는 출범 한 달여 만에 전문과 64개 항의 본문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합의문은 현재 경제위기 상황의 심각성에 대해 각 경제 주체들이 깊이 공감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발씩 양보하고 타협을 이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최대 쟁점사안이었던 임금부문에서 노측이 '절감'이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임금 삭감'을 수용하는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 1998년 외환위기 때와 달리 종교계와 사회 원로,시민사회단체들이 대거 참여해 민간이 노사의 일자리 창출 노력을 측면에서 지원키로 한 점도 의미가 있다.

◆노측,'절감'=삭감 사실상 수용

노 · 사 · 민 · 정 비상대책회의의 이날 합의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노동계는 기업의 경영여건에 따라 임금 동결 · 반납 또는 절감을 실천키로 한 것'이다.

이세중 비상대책회의 대표의장은 "한국노총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인식해 최대 쟁점인 임금문제에 있어 스스로 임금동결과 반납 등을 수용했다"며 "삭감과 절감은 삭감이 어감이 좀 더 강하고 타율적인 측면이 연상되지만 그 근본 정신에선 차이가 없다"고 노조의 고통분담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여기에 이수영 경총 회장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올해는 임금인상 가이드 라인을 서로 내지 않기로 노사가 암묵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했다"고 부연했다. 예년의 경우 노사가 서로 임금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임금협상시 이 가이드라인에 맞추다 보면 사실상 임금 상승 효과가 반영되는 부작용이 있어왔다.

이 밖에 노동계는 불법파업이 근절되도록 하고 기업의 인사 · 경영권을 존중해 불합리한 참여 요구를 하지 않는 등 상생의 노사문화 정착에도 힘을 모으기로 했다.

◆경영계,'해고 자제'키로

이번 합의문에서 경영계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자제해 기존의 고용수준을 유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따라 경영계는 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일방적 감원보다는 희망퇴직을 최대한 활용키로 했다.

또 대기업은 사내 하청업체 및 협력업체의 고용안정과 상생협력을 위해 적극 지원키로 했다. 기업은 특히 잉여금 등 보유자금을 활용해 미래 성장동력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서 실업대란의 근본 치료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이어 노사 공동으로 각 사업장 현실에 맞게 교대제 개편과 근로시간 단축,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확대키로 했다. 이 밖에 노사 간 합의로 △(순환) 휴직 · 휴업 제도 도입 △무급 안식월(년) 제도 도입 △인력재배치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적극 실천키로 했다.

◆정부,세제 · 예산 지원 확대키로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임금소득이 감소한 근로자에 대해 일자리 나누기 실천기업에 상응하는 수준의 세제지원을 추진키로 했다. 그간 정부의 세제 지원책이 기업에 편중됐다는 지적을 보완한 것.여기에 한시적으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활용해 근로자의 생계비 지원도 가능토록 해 급한 불을 끈다는 생각이다.

노사 간 경제위기 극복 자율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고용유지 지원금의 지원 수준을 상향 조정하고 훈련 · 휴직기간 등 지원 요건을 완화키로 했다.

◆선언에 그쳐선 안돼

2004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 · 사 · 정 대타협'을 포함,사회적 대타협은 이번이 네 번째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둔 대타협은 한번도 없었다. 따라서 이번 선언만은 과거와 달리 노동계 재계 정부 등 참여주체들이 구체적인 실천방안들을 마련해 산하 조직에 내려보내야 실효성을 거둘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대형사업장 노조가 많이 가입한 민주노총이 대타협에 동참하지 않아 반쪽 합의에 그친 측면이 크다. 따라서 정부나 재계,시민단체들은 민주노총 산하노조들에도 이번 대타협의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도록 여론을 통해 압박을 가해야 할 것이다.

이세중 대표의장은 "사회 각계각층이 두루 합의해 포괄적이며 실질적인 합의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