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비공개로 열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 · 사 · 민 · 정 비상대책 대표자회의'는 지금까지 합의하지 못한 쟁점 사항들에 대한 의견 조율을 위한 자리였다. 이날 회의의 최대 쟁점은 노동계가 임금 동결과 함께 임금 삭감을 선언할 것이냐,아니면 임금 반납을 선언할 것이냐였다. 나머지 사항은 대부분 실무협상을 통해 정리가 된 상태였다. 노 · 사 · 민 · 정 대표들은 '사회적 대타협' 발표일(23일)을 하루 남겨놓고 어떡하든 합의를도출해내야 한다는 데 공감해 대체적인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임금 삭감과 반납 격론

노사 간 핵심 쟁점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계의 고통 분담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 설정하느냐였다. 재계는 경제가 비상 상황이고 실제 많은 사업장이 임금을 깎고 있는 만큼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하는 데 노동계가 동참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임금 삭감'이란 단어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임금이 깎이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 삭감에 합의할 경우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금융노조 등이 임금 삭감과 동결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중앙단위에서 재계 및 정부와 임금 삭감에 합의할 경우 내부 반발이 예상외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임금을 삭감할 경우 퇴직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한국노총을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퇴직금은 줄어든 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에 대해 임금 삭감을 할 경우 퇴직금 산정 기준을 임금 삭감 이전으로 삼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설득했다. 고용 보장과 관련해 재계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인위적 구조조정을 자제하고 고용 유지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안전망도 확충

또 다른 쟁점은 사회안전망 확충이었다. 노동계는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사회안전망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안전망 확충과 일자리 창출,고용 보장,실업대책에 모두 31조9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부는 이 가운데 실업급여 기간을 현행 최장 8개월에서 11개월로 3개월 연장하고 실업급여 수급 조건도 고용보험 가입 기간 '최소 180일'에서 '150일 안팎'으로 완화키로 양보했다. 자영업자에게 고용보험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다.

그렇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하도급 · 협력업체 실직자에 대한 실업급여를 위해 '고용안정기금'을 설치하자는 시민 · 사회단체의 주장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날 논의된 대타협안은 한국노총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경제가 어렵고 근로자들의 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재계와 정부가 정책 등을 동원해 고용 유지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타협안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대형 사업장이 많이 가입한 민주노총이 대타협에 동참하지 않은 데다 이번 선언이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에 대해서도 구속력이 없어서다.

노 · 사 · 민 · 정 비상대책회의는 23일 오전 10시 노 · 사 · 정 대표와 YMCA 여성단체협의회 바른사회시민회의 조계종 천주교주교회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시민 종교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타협안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