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실 위험수위, 중산층 붕괴우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12일 "우리나라의 경제위기는 단기적으로는 정부 경제팀의 리더십이 실종됐고 이로 인해 경제의 불안정성이 가중된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이날 오후 명동 은행회관에서 금융연구원 초청으로 가진 `제1회 석학강좌' 강연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경제팀은 미국 경제팀보다도 훨씬 시장에서의 신뢰와 리더십이 취약한데 현재와 같은 위기 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 대책을 사례로 들며 "현 경제팀은 환율 상승이 바람직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곤 했고 이에 따라 환율이 급등했다"며 "문제는 달러 약세기에 환율이 상승하면서 수입물가가 급등했고 `키코' 등 파생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이 드러나자 거꾸로 달러 강세기에 환율 하락을 유도했고 여기에 수백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 소요됐다"고 주장했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경제구조의 불건전성을 꼽았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경제의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불균형이 심화됐다"며 "특히 가계의 건전성이 이미 위험수위에 와 있어 이번 위기로 중산층이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수출 위주의 대외 의존성이 심화되고 일자리와 소득이 양극화되면서 가계의 부실을 초래해 경제위기의 뇌관이 됐다"며 "건설.조선업 등의 부실에 따른 금융부실과 이로 인해 실물이 추가로 위축되는 총체적인 위기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총장은 "위기 때 정책 책임자의 판단을 흔히 `아트'(예술)라고 하는데 이는 더욱 고차원적인 판단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이라는 뜻"이라며 "이러한 아트로 정부 경제팀이 시장에서 신뢰와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내놓은 `녹색 뉴딜' 사업과 관련, "`뉴딜'이라고 하면 대규모 치수사업을 떠올리게 되지만 실제로는 경제운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으로 그리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라며 "녹색뉴딜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기보다는 토목건설 중심의, 과거에 많이 보아왔던 패러다임에 가까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구조조정에 대해 "토목건설 뉴딜이 급히 추진되는 데에는 건설업의 추락을 막자는 것도 하나의 이유"라며 "그러나 (건설 부문의) 거품은 반드시 꺼지게 돼 있고 새 호재를 만들어 거품을 지탱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며 조속한 구조조정을 주문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준서 기자 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