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감소'…'공급 차질' 전망 엇갈려

2008년 국제유가는 상반기와 하반기의 명암이 극명하게 나뉘었던 한 해였다.

연초 `100달러 돌파'로 시작된 뉴욕상업거래소의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지난 7월 11일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으면서 `200달러 시대'를 눈앞에 둔 듯했다.

2007년에도 연간 57%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거칠 것 없는 행보를 보였던 유가였기에 전세계는 200달러 시대 도래 가능성으로 인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너도나도 차 크기를 줄이고,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자전거나 두 다리를 이용하려는 운동도 본격화됐다.

특히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유가 고공행진에 초비상이 걸리면서, 초여름 내내 매일 청와대 수석회의의 주요 의제로 고유가 시대 대책이 오르기도 했다.

2007년과 2008년 상반기의 유가 폭등은 중국·인도 등 신흥시장의 수요가 급증한 탓도 있었지만, 달러 약세와 투기성 자본의 유입에 따른 것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부동산 침체 여파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데 이어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금융위기가 곧바로 실물경제 추락과 석유 수요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세계 1위의 석유 소비국인 미국이 수요 감소로 석유 재고량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2위 소비국인 중국마저 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져들면서 석유 수요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 아시아의 신흥 마켓들도 휘청거렸다.

경제의 암울한 지표와 전망은 유가를 한없이 끌어내렸고, 지난 다섯 달 동안 한 달평균 20-30%씩 떨어진 유가는 지난 7월 최고가와 대비할 때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폭락했다.

지난 12월 19일에는 배럴당 32.40달러까지 떨어지면서 `30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왔다.

당황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10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50만 배럴, 220만 배럴의 감산 조치를 단행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31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WTI는 석유 재고량 증가세 둔화 및 중동 정세 불안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가스 분쟁의 여파로 14%가 급등한 배럴당 44달러대에 마감됐지만 연초와 대비해 보면 54%가 하락했다.

반 토막도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이는 1983년 뉴욕에서 선물 거래가 시작된 이래 연간 최대 하락률이며, 2001년 이후 첫 연간 하락이다.

2009년 유가 전망을 놓고는 견해가 엇갈린다.

일단 최근의 경기 침체가 2009년에는 더욱 악화 되면서 석유 수요 감소는 공급 감소를 훨씬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DTN의 대린 뉴섬 수석 애널리스트는 "연말 반짝 상승 장세가 있긴 했지만, 기반은 여전히 매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크덴 파이낸셜 리서치의 마이클 데비이스 에너지 애널리스트도 "2009년 세계의 경제 전망은 끔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면서 "이는 유가가 굉장한 하락 압력을 받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1.4분기 유가가 배럴당 평균 49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내년 한 해 평균은 58.48 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불과 한 두달 전의 전망치 보다 평균 14달러가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상승 국면을 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동의 정세 불안과 러시아-우크라이나의 가스 분쟁 여파가 에너지 공급 차질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특히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이 확산돼 대규모 중동전으로 번지게 될 경우 전세계는 또 다시 `석유파동'에 휘말릴 수도 있다.

또한 OPEC이 최소한 배럴당 60달러 선으로 유가를 끌어올린다는 방침하에 추가 감산 논의를 계속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회원국들의 감산 이행 의지도 매우 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가 상승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최근 미국의 휘발유. 정제유 재고량 증가세가 둔화된 것 역시 산유국들의 공급이 줄어든 영향 때문으로 풀이되면서, 올 겨울 자동차 휘발유와 난방유 등의 값이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경기 침체 속도가 주춤하면서 다시 수요 증가가 공급 증가를 앞서는 상황이 올 경우 유가의 향배는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