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올해 하반기 실질 임금이 줄어든 것은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준다.

26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는 큰 폭으로 상승한 물가를 임금이 따라잡지 못해 실질임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내년에도 경기 침체로 일거리가 줄면서 실질임금 감소세가 지속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취업자수를 감안한 실질구매력도 거의 10년만에 감소세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가구소득 감소→가계부실 확대→내수위축→부동산가격 하락 →은행건전성 악화 등의 경로로 한국경제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 실질임금 왜 떨어지나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임금인 실질임금은 명목상 임금이 떨어지거나 물가가 오를 경우 하락하게 된다.

지난 3분기에 상용근로자의 실질임금이 작년 동기대비 2.4% 감소한 것은 유가 급등으로 소비자물가가 큰 폭으로 뛴 데 따른 영향이 적지 않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의 침체 영향이 파급되면서 임금을 동결하거나 적게 올리는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손민중 연구원은 "임시ㆍ일용직 중에서도 임금 수준이 더욱 낮은 근로자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4분기와 내년에는 실질임금이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기업들이 연말 상여금이나 성과급을 없애는가 하면,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라인을 멈추고 직원들에게 무급이나 유급휴가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수요 급감이 심한 자동차와 반도체 업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쌍용차는 최근 운영자금이 없어 월급 지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보냈고 GM대우는 지난 22일부터 8일간 전 공장 가동을 정지한 채 일부 필수 인력만 남기고 유급휴가를 보냈다.

르노삼성은 오는 31일까지 생산라인을 중단키로 결정함에 따라 생산직 근로자들이 지난 24일부터 휴무에 들어갔고 현대차도 조업시간 단축을 이어가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총괄별, 사업부별, 팀별로 연월차 범위에서 재충전 휴가를 권장하고 있다.

하이닉스는 노사가 인력조정, 무급휴직, 임금삭감 등 공동 자구노력에 합의해 전 직원이 내년 1월부터 4월에 걸쳐 2주씩의 무급 휴직을 감수하기로 했다.

해마다 특별 상여금을 지급해온 건설업체들도 어려운 사정 때문에 올해는 연말 보너스를 주기 어려워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용성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유가가 안정되면서 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는 낮겠지만 경기 악화로 인해 노동수요가 많지 않아서 실질임금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삼성경제연구소 손 연구원은 "기업에 수익이 나야 고용이나 급여도 늘어날텐데,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가 하강할 전망"이라며 "기업들이 본격 구조조정을 하기 전에 우선 일자리 나누기나 근로시간 단축, 유급휴가 권장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실질임금 감소, 한국경제에 타격

실질임금 감소는 소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가 더욱 위축되면 한국경제가 받는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커진다.

아울러 주변 사람들의 실질소득 감소는 소득에 변화가 없는 계층에도 심리적인 영향을 주면서 내수 위축을 광범위하게 확산시킨다.

취업자 수에 실질임금을 곱한 실질구매력이 거의 10년만에 감소세를 보인 것도 한국경제에 큰 부담을 준다.

실질임금은 평균 임금수준의 움직임을 나타내지만 취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반영하지 못한다.

앞으로 실업자가 대폭 늘어나면 실질구매력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내수의 핵심축인 소비가 경제성장률을 강하게 끌어내리는 현상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실질임금과 실질구매력의 감소는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가계부실을 확대할 수 있고 이는 은행의 건전성에도 타격을 주면서 경제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흔들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의 송태정 연구위원은 "가계가 흑자를 내야 가계부채를 줄일 수 있는데, 실질소득이 줄어들면 가계부실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임시직, 일용직 등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계층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내년에는 시장금리가 여전히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실질임금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가처분소득대비 이자 지급액이 1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배 위원은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로 고용을 늘리고 부동산가격 급락을 막는 등 가계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이런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시행되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mercie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