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부터 한 주유소에서 특정 정유사의 제품만 팔도록 하는 `상표표시제 고시'가 폐지된다.

이에 따라 주유소에서 특정 정유사의 상표를 게시했어도 혼합판매 사실을 표시하면 다른 정유사의 제품을 팔거나 여러 정유사의 기름을 섞어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 고시가 없어지면 주유소에 대한 정유사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지면서 제품 공급 경쟁이 벌어져 고유가 시대에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유소들 역시 정부와 같은 입장이지만 정유사들은 유통 마진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 인하 효과는 별로 없고 혼합 판매로 품질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김관주 소비자정보과장은 31일 "상표표시제 고시의 폐지에 따라 주유소들이 특정 정유사와 맺은 전속계약이 끝나면 혼합판매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며 "전속계약 기간이 보통 1~5년이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시는 1992년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호하고 정유사 간 품질 경쟁을 유도할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정유소와 주유소의 배타적 거래를 사실상 조장했고 실질적인 품질 경쟁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김 과장은 "9월부터는 정유사에 대한 주유소의 협상력이 강화돼 석유제품의 유통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주유소협회는 혼합판매의 허용으로 주유소와 정유사의 전속계약이 줄어들어 정유사의 공급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기름값이 ℓ당 40~50원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주유소가 혼합판매 의사를 밝히고 있다"며 "전속계약 기간이 남아있어 당장 섞어 파는 주유소가 많지는 않겠지만 전속 기간이 끝나거나 현재 정유사의 지원을 받지 않는 주유소는 혼합판매에 나설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정유사와 카드사가 제휴를 해 기름값을 할인해 주는 관행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주유소가 직접 카드사와 제휴해 소비자에게 가격을 깎아주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혼합판매의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대응책 마련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정유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다른 업종에 비해 낮을 정도로 박리다매를 하고 있다"며 "지금도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혼합판매를 통해 기름값을 내리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주유소가 카드사와 직접 제휴를 하면 주유소의 마케팅 비용 때문에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할 것"이라며 "하지만 영업 환경에 변화가 생긴 만큼 이제는 소비자가 아닌 주유소를 상대로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김호준 기자 kms1234@yna.co.kr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