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배우게 하고, 작은 아이는 독일어,프랑스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사비나 콘스탄티노바 불가리아 현대자동차 딜러는 자녀외국어 교육을 이렇게 전략적으로 시킨다고 고백했다.

유럽연합(EU) 가입과 미군주둔 결정 등으로 영어바람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구태여 러시아어를 배우게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은 미국과 EU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지만 러시아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불가리아 처지에선 러시아어를 배워두는 게 절대 필요합니다."

사비나의 자녀 외국어교육관은 '고래들 사이에서 새우들처럼' 살아온 발칸인들의 고뇌를 대변해준다. 오그니얀 민체프 소피아대학 교수(정치학)는 "역사는 되풀이한다는 징크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발칸 안팎의 리스크들을 간추려 본다.

1. EU 경제 변수=발칸경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EU 견인차들의 경제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이들이 '동진정책'을 계속해야 발칸에 대한 각종 지원도 늘어나고 서유럽기업의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EU는 러시아의 발칸에 대한 영향력 회복을 막기 위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가입을 서둔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아직 가입을 못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이 기대하는 추가개방이 조만간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EU추가확장은 독일경제의 회복속도와 사르코지 신임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 개혁의 성공여부에 크게 좌우될 것이다.

2. 러시아의 영향력 회복 시도=공산주의 시절 발칸과 흑해를 지배했던 러시아는 공산권붕괴 이후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국제 에너지값 폭등에 힘입어 러시아는 발칸에서 권토중래를 모색 중이다. 현재로선 러시아의 재등장은 발칸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러시아도 군사 대결이 아닌 에너지 물류기지 등을 확보함으로써 경제적인 영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고전하고 부시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져드는 틈을 타서 러시아의 움직임이 거칠어지고 있어 발칸국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3. 취약한 제조업=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 견줘 제조업 기반이 약한 가운데 EU에 가입하면서 부동산개발 소비금융 소매유통 관광 등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보기술(IT)도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중심이다. 아직 개도국 수준인 발칸경제가 제조업의 뒷받침이 취약한 가운데 서비스중심으로 지속발전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4. 관료주의 기득세력=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는 올해 EU에 가입하면서 외교ㆍ금융ㆍ교육 산업정책 등 분야에선 친시장적인 개혁을 많이 했지만 사법부와 지방행정 등 대민접촉분야에선 아직도 사회주의 기득세력이 만만치 않다. 일반 직장인들도 오랜 사회주의 유습으로 인해 일보다는 휴가를 즐기는데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생산성은 서유럽에 훨씬 못 미치는데도 직장의 휴가문화 등은 선진국과 다를 바 없는 정서를 보여준다. 즉 자본주의 정신을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가운데 '선진형 레저사회'에 접어든 듯한 '아이러니'가 나타나고 있다.

5. EU가입 과잉기대 심리=루마니아 대우조선(DMHI)은 올해 심한 노사분규를 겪었다. 물론 한국에 비해선 심한 것도 아니지만 이 나라의 과거 경험에 비춰 볼 땐 그랬다. 임금을 무려 50% 이상 올려주기로 했고 내년에도 대폭 인상을 약속했다. 그런데도 조금만 숙련도가 높아지면 독일이나 스페인 등으로 이직해 버린다. 금융 컨설팅 등 고소득 전문직들을 중심으로 한 인재의 'U턴'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블루칼라'인력유출'이 경제의 큰 걸림돌이다.

또 올해 EU에 가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소비성향이 너무 높아진 것도 문제다. 아직 소득수준이 한국의 3~4분의 1 수준인데 자동차구매 욕구가 폭발하는 등 소비는 어느 새 서유럽 성향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