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금리 정책 효과 계속 떨어지고 운신의 폭 좁아져

콜금리를 7개월째 동결중인 한국은행이 추가 콜금리 인상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적절한 기회를 포착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은이 물가안정목표 범위를 너무 높게 잡는 바람에 통화정책을 펴는데 운신의 폭이 좁아졌으며 그에 따라 금리인상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워진 형국이다.

여기에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해외부문에서 유동성 공급 압박이 커지고 있는 것도 한은의 통화정책효과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채권시장에서 한은의 금리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는 가운데 재정경제부가 채권부문에 조직과 기능을 강화하는 등 통화정책을 담당한 한은이 마치 사면초가에 빠진 모양새다.

◇ 물가안정 목표, 너무 높게 잡았나 = 한은은 지난해 물가안정목표의 기준을 근원인플레이션율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로 바꾸면서 중기(2007∼2009년) 소비자물가 안정목표를 3.0±0.5%로 설정했다.

물가안정목표 범위는 한은이 재경부와 협의를 통해 정하게 돼 있으며 당초 협의과정에서 한은은 2.5%±0.5%를 제시했으나 재경부의 주장에 밀려 3.0±0.5%라는 목표범위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은 가급적 목표 범위를 낮춰 콜금리 조정에 운신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입장이었던 반면 재경부는 목표범위를 높게 설정해 콜금리 인상 기회를 가급적 제한하려는 쪽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7%에 불과했고 2월에도 2.2%에 그치면서 중기물가안정 목표치의 하한선에 크게 밑돌았다.

한은도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5%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렇다면 `물가상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콜금리 인상'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

특히 중국 효과에 의한 전세계적 저물가 현상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세계 경기둔화의 여파로 물가압박의 리스크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국내 경기상황만 보더라도 수요요인, 즉 내수경기 활황으로 인한 물가압박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으로 국제 원자재가격이 떨어지고 있는 데다 국제유가도 전세계의 수급상황으로 볼 때 이상급등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공통된 전망이다.

따라서 물가안정목표를 높게 잡아둔 상황에서 물가앙등을 이유로 한은이 콜금리 인상에 나설만한 명분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한은 관계자는 "다 지나간 일이지만 재경부와 협의과정에서 물가안정목표 범위를 좀 더 낮추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물론 중간에라도 물가안정 목표범위를 수정할 수도 있지만 재경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한은의 콜금리 인상에 극력 반대하는 재경부가 범위 수정에 선뜻 동의할 것 같지도 않다.

◇ 갈수록 약화되는 통화정책 효과 = 한은이 지난해 2월과 6월, 8월 등 세차례에 걸쳐 콜금리를 인상했으나 작년 하반기 시중유동성 증가세는 오히려 더 가팔라졌다.

한은이 고육지책으로 16년만에 처음으로 지급준비율 인상을 단행했으며 당시 한은은 "콜금리 인상에 비해 지준율 인상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들어서는 유동성 증가세가 한풀 꺾이고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도 눈에 띄게 둔화됐으나 이러한 효과가 과연 콜금리 인상과 지준율 인상에 따른 결과물인지는 의문시된다.

거듭된 콜금리 인상에도 아랑곳 하지 않던 주택담보대출 급증세가 올해들어 둔화된 것은 금융감독당국의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확대 등과 같은 강도높은 대출규제가 즉효를 본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1,2월이 이사 성수기가 아닌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 "1990년대초 금리가 20%대에 육박할 당시에도 부동산 투기는 있었다"면서 "만약 부동산 광풍이 불어닥치기 전에 한은이 생각하는 적정수준으로 콜금리를 과감하게 올려놓았더라면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개연성이 있었으나 기회를 놓치면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반감되는 상황이 초래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의 하준경 박사는 "미국의 경우 금리 인상기에는 17차례에 걸쳐 연속으로 과감하게 금리를 올리면서 시장에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면서 "우리의 경우 콜금리 인상 후 몇달을 쉬어감에 따라 시장에 던지는 시그널이 불분명하고 그에 따라 시장도 이러한 템포에 익숙해져 통화정책의 효과가 희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문제와 함께 지난해 400억달러 이상의 외화가 은행의 단기차입금 형태로 국내 유입돼 유동성증가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이러한 해외 유동성 유입에 한은이 대응할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것도 고충이다.

또 `단기금리 조정→장기금리 조정 →실물경제 파급'이라는 형태로 통화정책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실질 금리가 결정되는 채권시장에서 한은의 영향력은 위축되고 오히려 정부의 입김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재경부가 금융전문가들을 충원해 국고국내에 국채과를 신설키로 하자 채권시장에서는 앞으로 시장금리 형성에 한은보다 정부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