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처리 여부를 놓고 5개월 넘게 논란을 벌였지만,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국회는 29,30일 이틀간 본회의에서 동의안을 표결에 부치려고 했으나 번번이 농어촌 출신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로 실패했다. 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것은 내년 총선을 의식해서다. '표심' 앞에선 도ㆍ농 출신의 구분만이 있었을 뿐 여야가 없었고, 국익도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측은 세계적인 개방화 시대에 무역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FTA 체결 외면은 국가 신용도 하락은 물론 대외무역환경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30일 본회의에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했고, 이어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한나라당 조웅규 의원의 제안설명이 뒤따랐다. 조 의원이 제안설명을 읽어내려가자 국회 본회의장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한나라당 이규택 박희태, 민주당 김옥두 이정일, 자민련 이인제 의원 등 야3당 농촌출신 의원들이 일제히 단상 앞으로 몰려갔다. 이규택 의원은 박 의장에게 동의안 상정을 항의했고, 김옥두 의원과 함께 조 의원으로부터 발언대 마이크를 빼앗아 발언을 저지했다. 농촌 출신 의원들은 "대통령한테 농민 동의를 받아보라고 해(한나라당 이해구), 대통령이 직접 농민들을 설득해라(한나라당 윤한도), 한나라당이 왜 열린우리당을 도와주냐(한나라당 이상배)"며 강력 항의했다. 당론으로 FTA 통과 방침을 정한 열린우리당 의석에서는 "반대토론 하면 되지 의사진행을 막지마라"며 맞고함이 나왔고,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한나라당이 농민의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 망정 왜 나서서 처리하느냐"며 당지도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와 본회의장은 소란에 빠졌다. 박 의장이 "FTA 동의안과 관련 부수법안은 본회의에 계속 유보시키겠다"고 선언하자 농촌 출신 의원들은 "잘했어"라며 환영한 반면 도시 출신 의원들은 "왜 계속 진행하지 않느냐"며 항의, 도ㆍ농간 '온도차'를 보였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FTA 비준안 처리가 유보된 직후 외교부 관계자는 "협정을 맺어놓고 국회 비준을 못받아 1년 이상 FTA가 발효되지 못한 전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며 "어느 나라가 정치 논리에 통상정책이 좌지우지되는 한국과의 FTA협상 테이블에 앉으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8개 농민단체로 이뤄진 전국농민연대(상임대표 송남수) 소속 회원 1천5백여명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국회 앞에서 FTA 비준 동의 반대 집회를 이틀째 열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