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항만건설사업인 부산 신항만의 장비공급권이 자칫 중국업체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처해온 분야에서 "안방시장"마저 중국에 내주게 돼 국내업체의 생존기반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부산 신항만에 설치될 크레인 67대(약 2억달러)에 대한 일괄공급계약을 둘러싼 협상이 발주업체인 부산신항만(주)와 현대 한진 두산 등 국내 중공업체간 가격 및 공급조건의 의견차로 무산될 상황에 처했다. 신항만측은 국내업체의 견적금액이 목표금액인 1억8천만달러 이내로 제시되면 수의계약을 추진하겠지만 이를 초과할 경우 국제입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중공업체들은 신항만 장비도입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CSX월드터미널사가 최대 경쟁사인 중국의 ZPMC사를 염두에 두고 원가 이하의 가격을 제시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장비도입,해외업체가 결정 장비도입권은 신항만㈜의 2대주주(24.5%)로 신항만의 운영을 책임지게 되는 CSX월드터미널사가 갖고 있다. CSX는 사업비의 27%(4천억원)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창구역할까지 맡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입김을 행사하고 있다. CSX는 국내업체에 장비를 발주하는 조건으로 △총금액 1억8천만달러 △달러베이스 계약을 내걸고 있다. 공사비도 선급금으로 10%,인도시 70%를 주고 시험운영이 끝난 뒤 나머지 20%를 준다는 조건이다. 수용하지 않을 경우 국제입찰을 통해 공급업체를 선정하겠다는 게 CSX사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국내업체들은 가격 자체가 원가에 못미치는데다 달러베이스 계약으로 환리스크 부담까지 떠넘기는 것은 지나치다며 반발하고 있다. CSX사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업체는 국제입찰에서 매번 저가수주를 통해 국내기업과 경쟁해온 중국의 ZPMC사밖에 없다며 두 회사의 '유착 가능성'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제출한 설비운영 계획서상 장비제작은 국내업체로 한정돼 있음에도 불구,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거래임에도 불구,CSX가 달러거래를 고집하는 것은 홍콩의 외국 금융회사로부터 들여오는 차입금을 헤지하기 위한 의도"라고 말했다. 해외차입 비용을 줄이고 항만운영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저가공급과 달러화 결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업체,직격탄 현대중공업측은 만약 이번 계약이 중국업체로 넘어갈 경우 향후 국제입찰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밝혔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쓰지 않는 장비를 어떻게 해외에서 팔 수 있겠느냐"며 "대형업체는 물론 국내 1백50여개 협력업체들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라고 말했다. 국가적 사업에 국내 납품실적이 전혀 없고 품질 운영 정비 및 사후서비스가 불확실한 중국업체에 장비를 의존하게 된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항만크레인협회 관계자는 "ZPMC사는 국제입찰에서 한국기업보다 20% 가량 싼 가격을 제시하지만 설비안정성에 문제가 커 클레임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