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천문학적 관세'에도 아랑곳 않는 중국의 초저가 공세에 떨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회원국인 멕시코는 지금까지 저렴한 인건비와 외국인 투자기업들에 대한 세제혜택, 1억 인구가 형성한 폭넓은 내수시장 등으로 수출과 투자유치, 제조업의 활성화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들어 곳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바로 중국때문이다. 멕시코가 수출입면에서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제조업계의 불황이 가시화하고 있는데다가 중국산 초저가 제품이 미국시장에서 멕시코산을 대체하면서 멕시코 관련산업의 타격은 극심할 정도이다. 중국산 제품은 이미 미국뿐 아니라 멕시코 시장에도 범람하면서 섬유원단과 완구류부터제조기계류에 이르기까지 멕시코 산업의 목을 조이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시장에서 멕시코산 제품은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부터는 중국산에 역전당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멕시코 정부는 중국산 제품의 무차별 수입을 막기 위해 품목에 따라 최저 500%, 최고 1천105%라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수입원가가 멕시코산은 물론 다른나라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기 때문에 그 정도의 관세에 유통마진을 얹고도 멕시코산이 뒤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헐값'으로 시장에 등장한다. 가격 뿐 아니라 디자인과 견고성도 이전보다 훨씬 나아져 멕시코 유통업자들마저아예 자국의 협력업체에 하청을 주기보다는 중간 오퍼상을 거쳐 중국 기업에 하청을주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중국산 밀수품이 쏟아져 들어와 시장을 교란시키는 것도 멕시코 제조업체들의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들고 있다. 섬유 원단과 원사, 의류, 완구류, 양말, 화학제품 등 해마다 밀수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제품은 20억달러 어치에 이른다. 이는 모든 서류를 합법적으로 갖춰 멕시코에 정식으로 수입되는 물품가격과 맞먹는 액수이다. 외국기업들의 우선 투자대상에서 멕시코가 중국에 밀리는 것도 멕시코 정부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기업들은 불과 1∼2년전까지만 하더라도 값싼 인건비에 세제특혜까지 제공하는 멕시코를 우선 투자대상국으로 지정해 자금을 쏟아붓는 편이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기업들이 중국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의 수출입자유공단(마킬라도라)에 설치한 생산공장들의 설비를 중국으로 속속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장난감 제조업체인 하스브로와 노트북 업체인 데이 러너, 골프용품업체인 인터내셔널 골프, 러닝머신 업체인 아스테크 등 미국 기업과 캐논, 카시오 등 일본 업체 65개가 마킬라도라인 티후아나의 125개 생산라인을 폐쇄한 뒤 설비를 중국으로 옮겼다. 이 때문에 티후아나 지역에서는 3만5천명의 실업자가 생겼다. 이는 투자규모가 비교적 큰 기업체에 국한한 것이지만 중소 투자업체까지 더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지난해 250억달러까지 이르렀던 멕시코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액수가 올들어서는 12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다. 반면, 올해 중국의 외국인 투자액수는 전년에 비해 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멕시코에서 U턴한외자가 중국으로 몰리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했다. 상황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 지금까지 중국산 제품에 부과하던 고율의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할 수밖에 없다. 관세 장벽이 낮아지면 중국산 제품은 이제 안심하고 멕시코 내수시장을 장악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중국은 멕시코에 자동차 시장의 개방을 요구한 끝에 상하이자동차공업이멕시코에 조립라인 건설 및 승용차 수출을 시도하면서 기존 자동차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멕시코 유력일간 엘 우니베르살은 최근 대중국 교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멕시코 정부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측과 무역역조와 밀수근절 대책 등 각종 경제협력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지만 중국의 `붉은 공세'를 피할 길은 없어보인다"고 진단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 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