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사회주의 고립국가"인 북한의 체제 개혁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북한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대가로 50억~1백억 달러의 무상자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돼 고질적이었던 자금난으로부터 일단 한 숨을 돌리게 됐다. LG경제연구원은 19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지난 65년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국교정상화 대가로 받았던 "식민통치 배상 청구권 자금" 5억달러를 현재가치로 환산할 경우 50억~60억달러에 이르며,그간의 이자율까지 따지면 1백억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1백억달러는 한국은행이 추계한 지난해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64%에 달하는 거액이다. 일본이 북한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배상금을 물지는 몰라도 북한이 만성적인 공급부족 문제를 해소하고 체제 개혁을 선순환으로 이끄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만큼의 자금은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은 지난 7월 생필품 가격을 올리고 임금을 인상하는 등 일련의 개혁조치를 단행했다. 달러화와의 환율도 현실에 맞게 올리고 식량배급제를 일부 폐지했다. 기업과 개인들에 대한 조세제도도 도입했다. 그러나 '시장경제 요소'로 평가받는 이같은 조치들이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만성적인 공급부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조명철 대외경제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제대로 공급할 수 없는 북한이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개혁조치들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사회 혼란만 가중시키고 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며 "일본이 제공할 경협자금을 통해 북한이 체제개혁 초기단계에 필요한 비용을 확보하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북한이 진정으로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다. 북한은 지난 7월 이전까지만 해도 생필품을 정부가 지급하는 '배급제'를 고수해왔다.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부가 최소한의 기본 물자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회주의 경제체제 실패로 생산력이 급속히 떨어져 식량조차 공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이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 체제개혁과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이태섭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현재 상황으로는 북한 지도부가 중국식 개방·개혁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경제난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요소를 한정적으로 도입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이유야 어쨌든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고 문호를 개방하는 조치들이 누적될 경우 북한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이라며 "북한 지도부도 과거 사회주의 체제로는 더이상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만큼 정책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