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거품 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비관론이 일본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2000년의 IT(정보기술) 버블 붕괴는 단지 서막에 불과했을 뿐, 엔론 파산에 이은 월드컴 회계 스캔들 등은 미 경제 전체가 거품 투성이었으며 그 거품의 본격적인 붕괴를 알리는 예고된 신호탄이라는 지적이다. 미 주가 폭락과 달러화 급락 사태를 바라보는 일본내의 이러한 지적에는 지난 10년간 일본의 '전유물'이었던 경제 버블의 온갖 유산을 이제 미국이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강하다. 주가 하락 등으로 인한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 발생,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 업습 등 지난 10여년간 `주식회사 일본'을 괴롭혀 왔던 것들이 그것이다. 미 경제에 대한 비관론자들은 전후 미.일 경제가 10년을 주기로 엎치락 뒤치락 해온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90년 일본의 버블이 붕괴되기 전 미국이 `일본식 경영'을 배우려 했었다면 미일 경제가 역전된 최근 10여년 동안은 일본이 반대로 미국식 경영의 모방에 열을 올렸다. 그러던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미국 경제가 버블론에 휩싸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장기 불황을 딛고 이제 막 경기 저점을 선언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미국의 경제 불안이 일본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볼멘 소리나, 월드컴의 회계 스캔들 등은 기업 실적은 그 다음이고 주가 상승이 최우선시되는 '주가 지상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식 경영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지적이 언론 등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항상 미국으로부터 부실 채권의 조기 해결과 구조 개혁을 요구받는 입장에 처해 있던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지적들이다. 심지어는 미국의 버블 붕괴는 일본보다 심각하다거나, '일본발'이 아닌 '미국발'금융 위기를 우려하는 '충고'도 나오고 있다. 미일 경제가 또하나의 변곡점을 맞이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라 할 만하다. 오비 도시오(小尾敏夫) 와세다(早稻田) 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인터넷 버블 붕괴에 의한 닷컴 불황, 판매업자의 코스트다운 불황, 통신 회사의 과잉설비 투자 및 과당경쟁 불황이 중복된 '트리플 불황'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일본내 비관론자들은 최근의 달러 하락 국면도 쉽게 제동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가이 히로시(大海宏) 게이와(敬和)학원대학 명예교수는 달러-엔 환율이 연내에 100엔선이 붕괴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수년 안에 지난 95년의 달러당 79엔 선까지 달러가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이와 함께 주가 급락으로 미국의 금융기관과 가계 등이 언젠가는 떠안아야 할 '부의 유산'과 기업의 과잉 투자 문제 등은 버블 붕괴를 가속화시킬 충격 요인으로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연합뉴스) 김용수특파원 y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