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SK(주), LG정유 등 주요 정유업체들은 휘발유 공급가격을 ℓ당 1천2백3원으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주유소들은 여기에 적절한 이윤을 보태 1천2백47~1천2백69원의 가격에 휘발유를 팔고 있다. 그러나 모든 주유소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공급가인 1천2백3원 미만에 휘발유를 파는 주유소도 상당수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정유사들보다 더 싼 값에 휘발유를 공급하는 석유수입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의 제품으로 판매한다. 반면 석유수입사들은 아예 해외에서 휘발유 등을 완제품 형태로 수입해 팔고 있다. 정부는 지난 97년 정유사의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석유수입 자유화조치를 단행했다. 석유수입을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한 것. 이에 따라 일정한 저유시설만 갖추면 누구든지 석유제품을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석유수입사로 등록된 업체는 모두 36개사. 이들이 지난해 수입한 석유제품의 물량은 전체시장의 1.7%에 해당하는 1천2백70만배럴에 달한다. 2000년의 시장점유율 0.9%에 비하면 2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더구나 휘발유 등유 경유만 놓고 보면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5%에 달한다. 지난 2001년 9월 복수폴 주유소의 도입이 허용되면서 이같은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올해는 전체시장의 3%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석유수입사들이 순탄하게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석유수입사 36개사중 실제로 석유를 수입한 회사는 17개사 뿐이다. 그나마 삼연석유판매 타이거오일 이지석유 페트로코리아 리드코프 등 5개 업체가 전체 수입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가장 규모가 큰 삼연석유판매와 타이거오일은 지난해 각각 2천9백77억원, 2천7백50억원의 매출과 15억9백만원, 10억5천9백만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지석유와 페트로코리아도 소폭의 흑자를 냈으나 리드코프는 4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석유수입업체들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도 석유수입업체들이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정유사들을 상대로 겨룰 수 있는 주무기는 바로 '가격경쟁력'이다. 석유수입업체인 타이거오일은 현재 ℓ당 1천1백55원에 휘발유를 공급하고 있다. 정유사에 비해 ℓ당 48원이나 저렴하다. 이처럼 타이거오일이 더 싼 값에 휘발유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정유사에 비해 고정비가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거대한 정유설비를 갖고 이를 운영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만 석유수입사는 저유시설만 있으면 된다. 제품의 질은 어떨까. 석유수입사들은 SK(주), LG정유 등 정유사 제품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페트로코리아 관계자는 "모든 제품은 산자부 산하의 한국석유품질검사소에서 검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석유수입사들이 가격을 무기로 갖고 있다면 정유사들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국내 주유소는 모두 1만5백67개다. 이중 SK의 직영 및 거래주유소가 3천7백93개인 것을 비롯 국내 정유사들이 1만1백31개를 운영하고 있다. 고작 4백36개의 주유소만이 무폴주유소다. 석유수입사들이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통로가 너무 비좁다. 이 때문에 석유수입사가 정유사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 자사 제품을 판매하다가 마찰을 빚기도 한다. 석유수입사들의 불만사항 중 하나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수입관세가 다르다는 점. 현재 원유에는 5%의 기본관세가, 석유제품에는 7%의 할당관세를 적용되고 있다. 석유수입사들은 이같은 관세 체계가 석유수입업체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관세에 대해서는 정유사들도 불만이다. 이들은 2%포인트의 차이로는 정유사들이 가격경쟁을 하기 어렵다며 적어도 5%포인트 이상은 차이가 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만일 정유사들이 원유를 정제하지 않고 석유를 직접 수입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석유수급문제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