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스위스 은행비밀법의 장래는 스위스 국민만이 결정할 수 있다면서 'EU는 스위스가 은행비밀법을 개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현지언론들이 전했다. 프로디 위원장은 1일 스위스의 이탈리아어 방송과 가진 회견에서 이같이 언급했다고 스위스국제방송은 보도했다. 프로디 위원장은 그러나 '9.11 테러사태는 세계화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으며 어떤 국가도 모호한 영역을 간직할 수 없다'며 EU와 스위스 양측의 더욱 긴밀한 협력을 촉구했다. 스위스 언론들은 프로디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이 스위스 은행비밀법의 당위성을 지지한 것으로 확대 해석했으나 최근 경색되고 있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관계를 염두에 둔 정치적인 의미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이탈리아 국민이 스위스 은행으로 빼돌린 불법 해외유출 자금의 반환에 스위스 은행비밀법이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제테러 지원자금의 색출을 위해서도 스위스 은행비밀법이 폐지돼야 한다고 공개적인 비판을 제기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유로화의 전면도입을 계기로 오는 2월말까지 이탈리아 국민이 해외로 빼돌린 자금을 국내로 송환할 경우 아무런 세제상의 제재도 가하지 않겠다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이에 대해 파스칼 쿠슈팽 스위스 경제장관은 트레몬티 재무장관의 발언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스위스 은행비밀법의 폐지 불가입장을 재천명했다. 한편 EU는 9.11 테러사태이후 스위스에 대한 은행비밀법 폐지를 EU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뜻을 시사하는 등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제네바=연합뉴스) 오재석 특파원 = oj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