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출자총액 및 부채비율 제한 등의 기업 투자와 금융 구조에 대한 규제들은 OECD 회원국으로서 독특한 것이다. 이런 정책들은 뜻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보다 시장지향적인 경제로의 이행을 지연시킬 수 있다. ...한국은 직접적인 정부 개입의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발표한 최신판 "한국 경제 보고서"가 지적한 내용이다. "뜻하지 않은 부정적인 결과"라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기회있을 때마다 다짐해온 현 정부를 향한 OECD의 따끔한 충고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OECD는 최근 별도로 작성한 '한국 규제개혁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건수 목표 달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그 효과가 회의적"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단기적 수치목표'에 집착하는 규제개혁 작업의 문제점은 정부 스스로에 의해서도 입증된다. 지난 5월 말 72개 항목에 걸친 규제완화를 골자로 하는 '기업경영환경 개선조치'를 내놓고는 채 두 달도 안돼 '추가 규제개혁 작업'에 착수한 것이 단적인 예다. 정부는 끊임없이 '규제개혁'의 성과물을 내놓고 있는데도 왜 일선 기업들은 물론 국제기구까지 한국 정부의 시장 개입이 과도하다고 비판하는 걸까. 기업인들이 현장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은 정부 규제의 획일화와 임의성이다. 한마디로 시장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기 보다는 정부가 시장 위에 군림하는 낡은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는 "하이닉스반도체의 대형 부실화로 이어진 대기업그룹간 '빅딜'을 비롯 부채비율 축소 등 핵심적인 기업정책의 대부분이 법적 근거도 없이 정ㆍ재계 합의 형식으로 강요돼 왔다"고 지적한다. 유한수 CBF 금융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시장논리에 근거를 둔 '법치'가 아닌 '행정재량'에 의해 규제를 남발하는 이유로 "재벌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국민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탓"으로 풀이한다. 현 정부의 경제 행정이 "구조조정 성과의 임기내 달성"이라는 강박관념에 쫓긴 나머지 "대중의 여론"에 유난히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 행정의 이른바 포퓰리즘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처럼 시장과 법률적 논리를 무시한 "졸속 규제"는 해당 기업들은 물론 우리 경제에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하기 일쑤라고 재계는 비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채비율 2백% 축소조치의 여파로 무리한 자산매각과 대량 유상증자를 초래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국내 우량기업들이 대규모로 저가에 외국기업에 줄줄이 팔려 나갔고, 자동차부품.제지.종묘 등 13개 업종에서 외자계가 국내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형만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획일적인 출자총액한도 적용으로 인해 30대그룹중 상당수가 유망한 기업이나 자산의 국내외 매각이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학영 기자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