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지난 4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반도체 가격 하락 등으로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마른 수건도 쥐어 짠다"는 식의 원가 절감운동을 벌이고 있다.

일부 계열사에서는 인력구조조정까지 실시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다 아는 얘기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하반기 경영계획을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발표했다.

그룹 전체의 설비투자(8조원)와 신규 인력 채용도 지난해 수준(4천여명)을 웃돌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실제와 약간 다르게 그룹 현황을 발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가능한한 비관적인 자료는 내지 말라는 주문을 한 때문으로 전해진다.

투명경영을 강조하면서도 필요하면 정확한 기업실상의 공개를 가로막는 정부정책의 이율배반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례는 또 있다.

포철은 얼마전 1.4분기 경영실적을 공개하는 IR(기업설명회) 자료에 경기침체에 따라 설비투자를 축소, 내실위주 경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언론사에 배포된 자료에는 투자축소 내용이 빠져 있었다.

역시 어두운 내용은 가능한 한 공표하지 말라는 정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입장을 명확히 정리해 끌려들어가지 않았지만 정부가 현대차에 대해 대북사업에서 일정한 역할을 해주길 알게 모르게 종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계열회사나 방계 기업에 대한 지원,다시 말해서 내부거래를 철저히 규제하고 있다.

현대차에 대해 수익성없는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을 지원토록 유도했던 일은 그런 점에서 논리적으로도 모순이다.

정부정책의 이같은 모순은 고용정책에서 특히 많이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모성보호법.

재계는 출산휴가를 늘리자는 등의 기본취지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조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단계에서는 비용증가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시행이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강행하면 결국은 여성인력 채용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시 고용승계 의무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영업양수나 자산인수시에도 고용을 승계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되기 위해선 노동부문의 유연성이 먼저 확보돼야 하는데 정부는 이 부문에 관한 한 ''딴소리''를 하기 일쑤다.

인력구조조정을 할라치면 실업문제의 심각성을 내세워 정치권까지 들고 일어난다.

고용조정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실기업을 인수하려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

또 고용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노동시장 구조가 경직돼 있고 중복인력의 정리를 제약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관계자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정부정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라며 "정부정책 자체가 혼선을 일으키면 기업들은 더 큰 혼란에 빠져 불필요한데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손희식.강동균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