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직함은 싫어''

최근 중소.벤처업계엔 ''사장 없는 회사''가 늘고 있다.

젊은 최고경영자(CEO)의 경우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장 감투를 과감히 벗어 던진다.

엔지니어 출신은 자신의 전문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른 직함을 갖고 다닌다.

특수 섬유 수출업체인 DMC 이기철 사장은 ''사장'' 대신 ''이사''라는 명함을 들고 다닌다.

가격 흥정 등 협상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다.

이 사장은 "외국 바이어들과 수출 상담을 할 때 사장이라는 신분으로 협상에 임하면 추가 협상이 거의 불가능하고 분위기도 딱딱해져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다.

특수강 공급업체인 우성특수강의 김홍엽 사장은 ''사장(社長)''이 아니라 ''사장(四長)''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5년 전 넉사(四)자로 잘못 인쇄된 명함을 갖고 다녔는데 고객들이 더 잘 기억하는걸 보곤 아예 명함을 바꿔 버렸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김 사장은 직원들 위에 군림하는게 싫어 회사에서도 서열이 네번째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인터넷 콘텐츠 업체 해피닥스 신동진 사장은 "대표 PD(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엔지니어 출신인 신 사장이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낸 아이디어다.

기업전산화 추진업체인 KTT컨설팅의 이형우 사장은 "수석컨설턴트"로 불린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전사적 자원관리(ERP)를 추진할 때 사장이라는 명함을 내밀면 상대방이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껴 업무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김서림방지 거울 제조업체인 컴파스텍의 이장호 사장은 "전무"로 불린다.

이 사장은 "주 수출국인 일본의 담당자들과 만났는데 서열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라서 그런지 사장이라는 감투가 장애만 돼 귀국 후 당장 직함을 바꿨다"고 설명한다.

홍보대행사 알린다커뮤니케이션의 안재만 사장의 타이틀은 기획실장이다.

호텔신라에서 잔뼈가 굵은 홍보맨 출신인 그는 "30대 초반으로 나이가 젊은 편이고 만나는 사람도 주로 30~40대여서 사장 명함은 주제넘게 생각된다"며 "실제로 영업효과도 크다"고 말한다.

이같이 사장 직함을 거부하는 비즈니스 풍토는 중국 일본 등 유교문화권 국가에선 종종 발견되는 현상이다.

장유유서의 위계질서가 만연돼 있고 자기를 낮추면서 상대를 높이는 겸양의 미덕이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잉태된 것이다.

게다가 체면보다는 실속을 중요시하는 젊은 벤처인들의 성향이 보태져 이런 사례는 앞으로도 줄을 이을 전망이다.

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