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책을 관장하는 진념 경제부총리와 물가 안정에 책임을 지고 있는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경기 대책을 둘러싸고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 부총리는 4% 이하로 뚝 떨어질 성장률을 우려했고 전 총재는 물가 안정이 위협받고 있음을 경고했다.

자연히 경기 대책도 달라 정부측은 금리정책을, 한은측은 재정확대를 주문하는 등 서로가 ''네 책임''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 현격한 경제상황 인식 차이 =최근 경제상황은 3개월전 경제운용 계획을 짤 때에 비해 크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진 부총리의 표현이다.

미국이 금리를 0.5% 내렸고 일본은 제로 금리로 복귀해야 할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진 부총리는 미국 성장률이 2%를 밑돌 가능성을 언급하고 이 경우 우리는 4% 이하로 곤두박질 칠 수도 있음을 우려했다.

실제로 4.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년반만에 마이너스 성장(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0.4%)을 기록했고 실업자 1백7만명, 실업률 5% 선을 넘겨 놓은 것이 최근의 경제상황이다.

전 한은총재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다급하게 금리 인하를 추진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판단이기도 하다.

성장률 하락도 문제이지만 물가를 놓치면 다 놓친다는 것이 물가당국의 속내다.

◇ 물가냐 경기냐 =재정경제부는 물가 상승이 코스트 요인(환율 유가 공공요금 등) 때문에 생긴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총수요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은은 연초부터 환율과 공공요금 쪽에서 고삐가 풀렸고 내년에 선거가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은 관계자는 "원화 환율이 10% 절하될 때 소비자물가가 1.5% 오르고 공공요금 인상의 물가상승 기여율이 46%에 달한다"며 물가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전 총재도 "물가목표 달성에 실패하면 중앙은행 신뢰 상실로 통화정책이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 금융정책이냐 재정확대냐 =세계적인 디플레 우려 속에 각국이 잇달아 금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에서도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적지 않은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재경부와 한은의 견해차는 너무 크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우려하고 한은은 물가를 우려한다.

때문에 한은은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고 재경부는 한은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정반대의 요구를 내놓고 있다.

◇ 조화가 필요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미.일 경제 긴급진단''이란 보고서에서 대외여건 악화에 대응해 거시경제 운용기조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역시 경착륙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는 아시아시장 보고서에서 ''한은이 4월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금융가에는 한은이 4월6일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한은도 어렵고 재경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금융시장에는 현대건설.전자.투신 문제와 회계대란 갈등도 도사리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와 한은이 경기 진단과 대책에서 조화로운 판단을 내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