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1998년말부터 추진해온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관련, ''경제적 실익이냐(협정 결렬), 명분이냐(협정 체결)''를 놓고 막판 딜레마에 빠졌다.

칠레 정부가 타이어 냉장고 등 주요 공산품의 관세를 협정 발효후에도 종전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최근 전해 오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한국이 상당수 농축산품 관세를 대폭 낮추거나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칠레로부터 공산품분야에서 대폭적인 관세 폐지안을 얻어내지 못하면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게 신중론의 배경이다.

농민들의 피해를 앞세운 정치권의 반대도 힘을 얻고 있다.

5일 오전 열린 당정회의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정부측에 농민 피해를 최소화해 주도록 강력하게 요구했다.

반면 협상을 타결지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당초 칠레와 FTA 협상을 시작할 때 많은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제적인 신인도를 높이고 향후 다른 나라와의 FTA 협정 체결에 대비하는 차원이었던 만큼 가급적 협상을 깨지 않는게 좋다는 지적이다.

칠레의 새로운 제안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박사는 "FTA 협정은 개방경제체제를 지향하는 국제경제사회에서는 커다란 흐름이 되고 있다"며 "작은 실익을 따지다가 협상의 틀을 깬다면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에 나서기 어려워지는 등 더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칠레측이 한국 정부에 보내온 관세양허안은 타이어 냉장고 상용차 등 30여개 품목은 협정예외품목으로 규정해 협정 발효후에도 관세를 계속 부과하고 승용차 및 부속품, 세탁기 등 70여개 품목은 최장 10년간에 걸쳐 단계적으로 관세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담고 있다.

이 안을 그대로 적용하면 한국의 연간 칠레 수출액 4억달러 가운데 3억달러어치(전체 수출액의 70%이상)의 수출품이 FTA 체결에 따른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한다는게 정부측 분석이다.

반면 한국의 관세양허안은 칠레의 수출액 8억달러 가운데 5억달러어치(60% 가량)의 수출품에 대해서만 관세 철폐에 유보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