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을 내놓은 한국 기업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은 아마도 언론사가 아닌가 한다.

신문 방송에 자기 제품 관련 기사가 나오도록 해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청탁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 신제품이란 것이 관련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 아닌 이상 특별 대우를 해 주기가 불가능하다.

특히 역사가 일천한 신생 벤처기업들의 경우, 그리고 해당 시장이 완전 포화상태에 이르러 본질적으로 무(無)수익 지대에 접어든 산업계의 경우 더더욱 그러하다.

이런 처지의 기업들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뭔가 새로운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이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사례가 미국의 델 컴퓨터(Dell Computer Corporation)다.

이 회사는 PC, 즉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이미 수많은 경쟁자들로 북적거리던 1984년 PC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PC는 이미 커머디티, 즉 원자재처럼 무엇을 써도 상관없는 일용품이 돼 있었다.

실은 다른 여느 커머디티보다 더 나쁜 실정이었다.

팔리지 않고 남는 재고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급락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돈벌기가 극도로 어려운 시장에 새로이 뛰어든 신생기업 델 컴퓨터가 지금은 PC업계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PC출하 대수로는 올해 비로소 컴팩을 제칠 전망이지만 시가총액 면에서 델은 이미 1998년에 컴팩을 앞질렀고, 지난해엔 컴팩의 3배나 되는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창업주인 마이클 델 회장은 컴퓨터 업계 최장수(最長壽) 최고경영자의 영광을 누리고 있기도 하다.

델 컴퓨터의 이같은 대 성공 이면에는 물론 수만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디지털 대비태세 급변 상황을 제대로 포착했다는 것이다.

델 컴퓨터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표준적 IBM PC 아류 제품을 주문 제작해 싸게 파는 것이었다.

고객들의 전화 주문 내역에 따라 물건을 만들어 팖으로써 재고 수준을 낮추고 중간상을 우회해 저가격에도 불구하고 고수익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델은 1990~1994년 사이 잠깐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한다.

시장점유율을 중시하면서 소매점에도 물건을 공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매출액은 급증했지만 순이익에는 전혀 도움이 안됐다.

델은 이에 간접유통을 즉각 포기했다.

델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이는 인터넷이 확산돼 사람들의 디지털 대비태세가 급속히 높아지던 시점과 일치한다.

델은 이런 사회변화를 미리 내다보고 199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 판매체제를 갖추기 시작해 1996년부터 이를 실용화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누구보다 먼저 고객들에게 초이스보드를 제공했다.

이는 고객들이 인터넷으로 델 컴퓨터 사이트에 들어와 자신이 원하는 PC를 마음대로 조합, 디자인 해보고 주문을 낼 수 있게 한 소프트웨어다.

이를 통해 델은 고객들의 취향을 즉각적이고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선금을 받고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됐으며, 불용 재고를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구태의연한 대언론 홍보에 목을 매는 수많은 한국의 신흥기업들에 델 컴퓨터는 좋은 스승이다.

최근 부쩍 높아진 우리 사회 전반의 디지털 대비태세에 눈을 돌릴 때다.

전문위원.經營博 shin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