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1주일 앞둔 지난달 18일 오후 3시.

헬싱키 공항은 이미 희끄무레한 백야에 묻히기 시작했다.

차고 우중충한 북구 특유의 겨울 날씨 속에 사람들의 움직임도 무거워 보였다.

공항에서 승용차로 한시간 남짓 달려 에스푸 구역의 초현대식 ''노키아 하우스(본사)''에 닿으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잰 걸음으로 바삐 움직이는 직원들과 세계 각국에서 온 피부색깔이 다양한 비즈니스맨들로 초국적기업다운 활기에 넘쳤다.

1층 로비 접견실에서 나이절 리치필드 부사장을 만났다.

그는 세계 톱 휴대폰회사의 차세대 리더답게 당당하면서도 소탈한 어조로 인터뷰에 임했다.

[ 만난사람 = 헬싱키(핀란드) 김성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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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지회사이던 노키아가 통신회사로 변신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 나이절 리치필드 부사장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것은 주력사업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경쟁업체들은 여러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노키아는 1990년대 초부터 모든 경영을 이동통신 단말기라는 하나의 사업에 집중했다.

둘째는 90년대 초반 이미 전 세계적으로 큰 휴대폰 시장이 등장할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우리는 무선전화가 유선전화를 압도할 것으로 믿었다.

셋째는 91년에 이미 소비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는 브랜드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브랜드를 "노키아"로 통일했다.

- 제지회사가 휴대폰 시장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기술적인 기반을 갖고 있었나.

<> 리치필드 부사장 =기술은 성공의 기초다.

노키아는 GSM(유럽 등지에서 통하는 비동기 방식) 휴대폰이 처음 출시되기 9년전인 82년에 GSM 표준이 될 기술 개발에 착수해서 엄청난 자금을 투입했다.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배터리 기술에서는 어떻게 우위를 확보했나.

<> 리치필드 부사장 =우리는 소비자들이 자주 충전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대기시간이 긴 배터리를 개발하게 됐다.

칩셋 등 휴대폰의 전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미국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가 칩셋을 디자인하는 단계부터 협력했다.

칩셋 디자인의 사례는 노키아가 변신에 성공한 또 다른 이유로 경쟁업체와 차별화되는 노키아의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노키아는 칩셋 등 대부분의 부품을 외부 생산업체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일찍부터 휴대폰의 표준을 만들고 연구개발(R&D).완제품 제작.브랜드 구축.판매 등에 자원을 집중하는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세웠던 것이다.

- 통신업종으로 전환하면서 직원들이 문화적인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나.

<> 리치필드 부사장 =업종 전환은 큰 변화였다.

노키아는 늘 비전과 전략을 종업원들한테 밝혀 왔다.

왜 통신업종으로 전환해야만 하는지를 진지하게 직원들과 대화했다.

90년대 초부터 매년 전세계 간부들이 일반 직원들과 함께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토론하는 "노키아 웨이(Nokia Way)"라는 행사를 하고 있다.

- 인센티브는 강화하지 않았나.

<> 리치필드 부사장 =금전적인 인센티브도 주지만 사실은 젊은 나이에 경력을 쌓고 책임있는 일을 담당하면서 일을 즐기고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인센티브다.

지금 노키아 경영진의 많은 사람들이 90년대 초반 매우 젊은 나이에 합류해 중책을 맡았다.

회사가 젊은이들을 수용하는 문화 그 자체가 인센티브다.

-그같은 인사시스템이 어떻게 제도화돼 있나.

<> 리치필드 부사장 =우리는 사업부문을 잘게 나누고 각각 작업팀을 만들어서 제품을 개발한다.

각 부문은 "프로그램 매니저"들이 주도하는데 사실상 임원이다.

그들 밑에는 기술 마케팅 구매 생산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배치된다.

프로그램 매니저들이 자원배분 예산 등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면서 1~2년에 걸쳐 자기사업으로 휴대폰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기업이지만 이같은 방식으로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 노키아는 해고를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인원을 정리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나.

<> 리치필드 부사장 =우리는 직원을 월급쟁이로 보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채용할 때엔 엄격하다.

장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들이 인터뷰하고 테스트도 한다.

두번째로 노키아 문화의 기초는 지속적인 교육이다.

다른 회사에서는 실수를 하면 문책을 하고 나가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 자리에 머물면서 실수로부터 배우고 실수를 정정할 수 있도록 한다.

통신업종은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직원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기술 마케팅 등 전문분야 지식을 쌓거나 외국어 등 개인적인 계발을 할 수 있도록 각종 교육을 실시한다.

세번째로 90년대 초 일부 사업부서를 매각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의 이해가 최대한 반영되도록 협상했다.

소비자가전 부문 등을 매각할 때에도 고용 안정이 계약서에 명시되도록 직원 입장에서 협상했다.

- 리치필드 부사장께서 개인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리치필드 부사장 =젊어서 노키아에 들어왔을 때 역동적인 산업에서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노키아가 나에게 기회와 책임과 결정권을 줬기에 열정을 갖고 일했다.

그러면서 일을 즐기게 됐다.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