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노정대타협"에 따라 2차 금융구조조정은 일단 은행의 자율로 넘어갔다.

그러나 은행들은 시장의 냉혹한 평가를 받을수 밖에 없다.

정부는 당초 한빛 조흥은행등 정부가 대주주인 은행들을 금융지주회사로 묶을 구상이었다.

부실한 은행들도 비슷한 형태로 정상화시킬 방침이었다.

이번 노정합의로 일단 스스로 정상화가 어려운 은행과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9월말까지 자체 경영정상화계획을 내야만 한다.

이 계획이 적정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으면 금융지주회사는 핵우산으로 들어간다.

이는 퇴출성격을 갖지만 은행의 문을 열어둔채 정상화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독자생존이 어려운 은행은 퇴출은 면할 수 있지만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고용조정을 감내해야 한다는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은행들은 시장 안에서 더 심한 격랑과 비바람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주도 구조조정의 문제점은 한번 사태가 벌어지면 정부나 당사자인 은행이 손쓸 여지가 별로 없어진다는데 있다.

참을성 없는 시장의 속성상 한번 예금 빠지면 걷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부 지방은행이나 종금사의 경우에서 확인했다.

따라서 은행들은 생존방식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여지를 얻었지만 이로인해 국민부담(공적자금)이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가 금융노조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에 결연한 의지를 보인 것은 시장의 즉각적인 평가로 금융혼란이 일어나기 전에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점진적으로 정상화시키기 위한 취지였다.

부실가능성이 있는 은행들은 금융지주회사로 넣어 2~3년에 걸친 단계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함으로써 당장의 공적자금 투입 부담을 줄이자는게 정부의 의도였다.

이제는 시장과 독립적인 경영평가위원회의 판단이라는 1차 평가를 받은 후 생존형태가 달라지게 됐다.

인원및 조직감축 속도는 정부 생각과 달리 더디게 됐다.

정부는 조직을 축소하거나 인원을 정리할때 노사간의 단체협약을 준수키로 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투입은행이든 부실은행이든 이런 원칙이 적용되면 노조의 목소리가 커질수 밖에 없다.

이번 은행파업에서도 노조원들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인원감축이었다.

공적자금 투입은행에 자율성을 부여한 만큼 우량은행간의 합병도 상당히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은행들은 합병논의를 중단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달말 기업자금경색 뒤 별다른 진전이 없다.

김상훈 국민은행장은 "큰 은행이 좀 더 규모를 키우고 효율성을 높여 리딩뱅크(선도은행)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면서 "문호는 항상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부분보호제도(2천만원)를 예정대로 내년부터 시행하되 금융시장의 여건도 고려키로 함에 따라 확대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개혁의지의 후퇴로 비쳐질수도 있게 됐다.

관치금융 청산을 법규가 아닌 총리 훈령 등으로 약속한 것이나 정부정책을 일일이 문서로 집행토록 한 것은 관료들에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시장이 불안해져도 자기 목을 내놓고 금융기관에 사후 부실이 우려되는 협조공문을 보낼 공무원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