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구책을 둘러싼 정부와 현대의 갈등이 우여곡절끝에 일단 봉합됐다.

양측은 시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28일 밤 늦게까지 현대측에 강력한 추가자구책을 요구하다가 막판에 "수용"으로 선회한 것은 시장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자구책이 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 의해 받아들여지기까지 빚어진 진통은 이번 사태에 대한 양측의 판단과 시각이 완전히 다른데서 비롯됐다.

정부는 현대건설에 긴급자금을 지원했고 현대투신에 대해서도 공적 자금투입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주영 명예회장 퇴진을 비롯한 지배구조개선 등으로 현대지원의 명분이 갖춰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현대는 그룹 전체적인 영업상황이 비교적 양호하기 때문에 현대건설의 일시적인 자금경색만 극복하면 시간을 두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순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현대 내부에서는 정부와 채권단의 강공에 대해 "할만큼 한 것이 아니냐"며 강한 불만도 제기됐다.

특히 정 명예회장은 계열사 대부분의 지분을 정리한데다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포함한 3개사 이사직을 사퇴키로 한만큼 이미 사실상 그룹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라며 정부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현대는 대신 5천4백26억원 규모의 현대건설 유동성 추가확보라는 추가대책을 제시, 채권은행을 어렵사리 설득하는데 성공했지만 ''시장의 인정''을 받아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 현대의 추가자구책 =현대는 이날 일단 현대건설 유동성문제에 대해서는 자산매각을 통해 5천4백26억원의 유동성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인천 철구공장과 압구정동 숙소 등 부동산매각으로 1천41억원, 상장및 비상장 계열사 지분 매각으로 3천3백85억원, 미분양상가 자산담보부채권(ABS) 발행으로 1천억원을 각각 조성한다는 것이다.

6천4백억원 상당의 서산농장 매각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대는 6월까지의 현대건설 차입금 만기도래분이 1조9천21억원(5월 5천2백80억원, 6월 5천6백41억원)이기 때문에 이만한 유동성이면 충분하며 7월이후는 현대건설 기성고 수입만으로 자체 상환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선도 자산매각 등을 통해 1조원 정도의 유동성 추가 확보가 가능하지만 현재의 자금수급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실제로 실행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는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지분 정리및 현대건설 대표이사 등의 이사직 퇴진, 자동차소그룹의 계열분리를 통한 경영지배구도 정리 등을 통해 문제해결을 낙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와 주거래은행(외환은행)이 압박에 반발했다.

현대는 추가대책이 불가피하더라도 자금문제를 해결한 다음 시장이 안정되면 시간여유를 갖고 추진할 것을 제의, 진통끝에 채권은행을 설득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 정 명예회장 퇴진에 대한 현대 입장 =현대는 정 명예회장이 사실상 이미 그룹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에서 추가조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 등 주력 3개사에 대한 지분을 대부분 정리한데 이어 현대건설 대표이사를 포함한 3개사 이사직 퇴진이 결정된 것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완전퇴진"은 현대자동차 지분까지 정리하라는 뜻인데 정 명예회장이 경영에 간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9% 지분은 경영권 보호라는 측면도 있다는 것이 현대의 주장이다.

<> 유망계열사 매각문제 =유망 계열사를 매각하라는 정부의 요구는 시장과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매각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는 회사중 하나인 현대전자나 현대중공업만 해도 계열분리하려면 당장 이들 회사가 갖고 있는 다른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데 연내에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

최근 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된데 대해서도 자동차분리를 위한 명예회장 등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불가피하게 빚어진 것이지 정몽헌 회장이 중공업 경영에 참여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 금융부문 최고경영자 퇴진문제 =문제의 본질이 현대건설의 일시적인 자금수급 불일치인 만큼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에 직접 책임을 묻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지난 27일 주총에서 현대증권 이 회장의 유임이 결정된지 하루만에 이를 그룹차원에서 다시 뒤집으라는 것은 계열사 독자경영이라는 정부 방침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현대투신문제가 마무리된 상황에서 이를 재론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는 입장이었다.

<> 정부와 채권단의 정책에 대한 불만 =현대는 현대건설 등의 유동성문제가 이처럼 불거진 데에는 금융권과 정부 유관기관의 대처에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회사채 만기연장만 해도 조용히 처리했으면 될 일을 한달에 1조원의 자금이 들어오는 회사가 5백억원이 없어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비쳐져 시장의 불신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김경림 외환은행장과 정몽헌 회장과의 면담이 공개된 것도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외환은행에서 과거 삼성카드와 캐피탈이 현대건설과 현대상선에 대한 대출금 등의 만기연장을 안해준 것을 하필 지금 와서 뒤늦게 거론한데 대해서도 고의성 짙은 실책이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현대는 올해 현대.기아차 중공업 전자 건설 상선 등 주요 계열사의 경영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어 펀더멘털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만큼 이번의 일시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구조조정계획대로만 해도 잘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문희수 기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