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의 중국 진출은 장쑤성 옌청시가 중국 공산당이 끔찍이도
아끼는 혁명도시여서 가능했다.

이 도시는 중국 혁명에 큰 역할을 해낸 "신사군"의 본거지로 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이다.

정부가 이 도시에 자동차공장 설립을 인가하게 된 것은 이 도시가 당에서의
비중과는 달리 매우 낙후된 곳이기 때문.

때마침 인도네시아의 화교가 "고국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전해와
내려진 결정이다.

"3대3소2미 정책"의 예외였지만 중국 정부는 그래도 정책의 큰 틀을 허물지
않기 위해 산업정책에서 빠져 있던 1천~1천3백cc급 승용차 생산을 허가해
줬다.

화교는 일본 도요타를 끌어올 생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가 그의 해외투자를 불허하면서 방향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는 옌청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1천~1천3백cc급 승용차를 찾아 생산업체에 권한을 넘겨주기로 했다.

그 결과 선정된 차종이 포드의 "페스티바".

기아가 만들어 포드에 납품하던 "프라이드"다.

중국 진출을 생각치도 못하던 기아자동차가 중국 진출의 실마리를 쥐게 된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기아 인수 직후 이 공장이 중국 진출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판단, 중국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중국측과 협상에 전력을 기울였다.

때마침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중국 정부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협상이 급진전된 것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