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의 협조융자 압력은 위법행위인가.

서울지법은 20일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금융기관에 협조융자 압력을 행사한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따라 금융당국이 금융기관에 요청하고 유도해온 협조융자 관행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환란 혐의 등으로 기소된 강 전 부총리와 김 전 수석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
공소사실은 두 사람이 97년11월 진도그룹에 1천60억원, 97년10월 해태그룹에
1천억원의 협조융자를 해 주도록 채권은행단에 압력을 행사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진도와 해태에 대한 대출압력은 개인적 친분이나 대선을 앞둔
시점의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 구체적이고 엄밀한 검토없이 협조융자를
지시해 채권은행장들에게 강력한 압력이 작용된 점이 인정되는 만큼 유죄"
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다만 협조융자로 이득을 취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덧붙였다.

협조융자 요구가 "대출압력"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댓가없는 행위였다는
점을 감안해 가볍게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판결은 금융당국과 금융기관간의 대출지시와 압력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정부가 깊이 간여한 대우그룹 계열 여신의 만기연장 같은 현안도 훗날
시비거리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금융당국은 시장안정을 위한 공익적 판단과 이에따른 협조요청이
선진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라며 일률적으로 불법행위라고 규정
짓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채권금융기관의 여신행위에 간여
하는 것은 불법행위일 수 있지만 감독당국도 자산건전성 감독차원에서 채권
금융기관의 여신을 문제삼을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나 청산보다는 협조융자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방식이 채권
회수에 유리하다면 감독당국이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래상환능력을 고려하는 새 자산건전성 분류기준이 도입되면 금융당국의
여신행위에 대한 감독은 크게 강화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만 당국자가 공적 판단을 떠나 특수관계에 있는 기업에
대출을 요구하는 행위 등은 정황을 따져 형사처벌대상이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정부나 정책당국자가 여신결정 과정에 어느 선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