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동안 우리 산업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없이 기업들이 줄지어 쓰러졌다.

주요 산업의 경쟁력은 이미 80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이다.

내수침체로 매출은 격감하고 20%가 넘는 금리부담에 부실의 정도는
깊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외자유치에 총력을 기울였다.

일부 기업은 달러를 들여다 부실의 구멍을 메우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응급처치를 끝낸 정도다.

앞으로 응급처치보다 훨씬 더 많을 출혈을 요구하는 수술, 다시말해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산업은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오래 버틸 수없다.

특히 환율이 달러당 1천3백원 밑으로 떨어지면 국내 산업은 아예 붕괴위기
에 놓일 것으로 우려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업활동이 동면기에 들어갔다는 점.

생산활동은 물론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설비투자와 R&D 인재교육 등 모든
부분이 올스톱 상태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IMF체제가 끝난다해도 이미 멀찌감치 달아난 선진
기업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구조조정이 더이상 늦어져서는 곤란한 이유다.

이번 구조조정은 우리 주요산업의 질적 향상 및 도약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시기를 놓치면 공멸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적극적
이고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구조조정에는 무엇보다 해당 산업의 실력과 처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의 실력과 처지를 단순비교하는 것보다 IMF의 혹독한
한파가 지나간 이후의 상황을 예견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동안 국내기업들이 저마다 내세우던 "21세기 초일류기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전략을 다시 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일부 경쟁력을 상실한 산업은 아예 외국 선진기업의 하청산업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

그동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납품을 끊고 독자브랜드의 마케팅에 주력
하던 가전메이커들이 다시 OEM 물량 확보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이 그런
경우다.

지금까지는 조선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이 국내 산업을 이끌어
왔으나 앞으로는 산업구조가 대대적인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핵심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고 집중하는 지혜가 그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점
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일 "국내산업의 구조조정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조선과 반도체는 세계적인 지배력을 갖는 기업군으로, 자동차 석유화학 등은
특정 분야에서만 경쟁력을 갖는 기업군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산업을 메이저 기업군으로 키울 수 없는만큼 개별산업의 특성과 능력
을 감안해 차별화된 구조조정 전략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구조조정이 성공하면 국내 주요산업이 세계 산업에서 메이저 또는
마이너 지위를 확보할 수 있으나 실패할 경우 대부분 마이너 또는 로컬
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조조정 여하에 따라 지위가 크게 달라지는 산업은 조선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통신 금융 등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쟁규모의 거대화(mega competition)로 세계의 기업들은
<>전세계적인 지배력을 갖는 메이저 기업군 <>시장 지배력이 선두보다
떨어지지만 일정 경제권역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마이너 기업군 <>자국내
에서만 경쟁력을 지닌 로컬 기업군으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 주요산업의 구조조정 방향 ]

<>.조선

- 물류/설계 개선 치공구개발 등을 통한 합리화 추진
- 대형범용선(VLCC)을 유지하면서 고부가선 비중 확대
- 한-일-중 3국간 전략적 제휴 적극 검토

<>.반도체

- 기존 강점부문이 메모리분야 강화
- 분업, 투자조정에 의한 생산구조 재편
- 비메모리사업은 시스템 LSI 등 특정분야 제품에 특화

<>.가전

- 저부가가치제품의 해외이전 가속화
- 기술융합제품(인터넷TV 멀티미디어PC) 개발
- 대형양판점 창고형할인점 통신판매 등 신유통체제로 전환

<>.철강

- 생산품목 조정, 특정부문 집중화 등으로 전문화 체체 구축
- 전략적 제휴와 협력 강화
- 수요처의 다양화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생산유연성 확보

<>.자동차

- 외국기업의 전략적 제휴 및 M&A 추진
- 인력/부품산업 육성 등 자동차산업 기반 강화
- 21세기 수요변화에 부응하는 신기술개발 투자 확대

<>.석유화학

- 공동구매 제품교환 등 국내 기업간 제휴협력의 확대
- 사업매각 지분참여 등으로 외자유치
- 장기적 관점에서는 사업통합(생산업체수 축소)

<>.통신서비스

- 업체간 협력확대및 대형화 유도
- 물량위주의 경쟁에서 서비스 차별화 경쟁
- 기기/서비스업체의 공동 해외진출

<>.산업용기계

- 저가 소형범용기종에서 중/고가 중형 전용기존으로 전환
- 지역 기술혁신체제의 구축

<>.섬유의류

- 중/저가 의류 직물의 대량생산체제에서 고감성 패션산업으로 전환
- 단납기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및 조기대응체제 구축

< 김정호 기자 j 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