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이 흔들리고 있다.

은행 창구는 얼어붙고 돈은 돌기를 멈추고 있다.

금리는 10일째 속등하고 있고 원화의 가치는 일주일 연속 폭락중이다.

주가 역시 연 6일을 속락, 92년의 악몽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금리와 환율의 트레이드 오프 관계는 당국을 정책 부재로까지 몰아넣고
있다.

돈을 풀어도 금리는 내려가지 않고 풀린 돈은 다시 원화의 가치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악순환이 빚어지고 있다.

화폐의 대외 교환가치가 국가 경쟁력의 실태를 상징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우리 경제 전체가 곤두박질 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난 7월초 4단계 금리자유화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금리는 최근 며칠간을
수직으로 올라 19일에는 12.32%(3년만기 회사채기준)로 올라섰다.

지난 5월9일이후 3개원미만의 최고치다.

금융기관들이 하루 하루를 콜자금으로 연명하면서 콜단기금리 역시 13%대를
웃도는 극히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원화환율은 이날 달러당 9백원을 넘어서 장중 한때 9백1원을 기록했다.

사상최고치다.

거래자들은 한은의 외환 보유고에까지 불안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통에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에다 엄청난 환차손까지 안게 됐다.

12월 결산법인중 금융사를 제외한 기업들의 올 환차손만 이미 2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추석을 앞둔 자금 시장에 "대란"이 있을 것이라는 불안이 갈수록 확산되는
것도 그래서다.

한보와 삼미, 진로와 기아사태를 두고 "기업의 실패냐 금융의 실패냐"는
고상한 논쟁을 거듭하는 사이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마저 한국
금융은 신용추락에 직면하고 있다.

금융의 위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부도협약이 만들어 졌지만 오히려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재촉할 뿐 기업의 회생과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회수
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도 시장원리"라는 말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지만 부도협약을
통해 금융기관들이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가설은 실제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책임부재 상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알아서 해결하라며 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기업과 금융이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는 얘기다.

자금수요자와 공급자 중개자가 완전히 겉돌고 있는 셈이다.

금융계와 재계에서는 획기적인 대안이 나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
하고 있다.

무작정 "지원"하라는 것이 아니라 "수습"에 나서라는 요구다.

< 정규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