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로 한달째를 맞게 되는 기아사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채권단이 부도유예협약의 근본취지와는 맞지 않는 금융제재를
좀처럼 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기아그룹의 자금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선홍 회장 퇴진 압력도 거세질 전망이다.

기아그룹내 일부 직원들은 "실력행사"에 나설 뜻마저 밝히고 있어
기아사태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협력업체 부도 =기아사태 발생이후 부도를 낸 협력업체는 모두 12개사.

8월들어 (주)일흥 서울차륜 대양유압 덕흥기업 등이 부도를 냈다.

기아자동차 구매본부장인 신영철 전무는 "오는 15일부터 18일 사이에
기아 협력업체가 발행한 어음이 집중적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며
"협력업체들의 부도위기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기아그룹 어음 1백억원 어치를 갖고 있어도 5억~10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를 내는 사태가 생기고 있다"며 "기아가 발행한 어음을 채권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할인해주는 것만이 협력업체들의 도미노 부도사태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기아그룹이 발행한 어음 가운데 현재 할인되지
않고 있는 어음은 4백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협력업체들이 대량 부도위기에 몰렸으나 현대 대우 등도 복수납품업체에
대한 추가지원이 어려운 상태여서 15일 이후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경우 자칫
국내 자동차산업의 마비현상까지 생겨날 우려가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어음장 교부 =기아자동차가 한달동안 평균적으로 사용하는 어음장은
2천2백~2천3백장이나 현재 은행들이 교부한 어음장은 70%선에 불과하다.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만이 어음장을 교부할 뿐 나머지 은행들은 어음장
교부를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기아그룹이 협력업체에 대한 물품대 지급을 자금운용의 최우선으로
삼고 있으나 아직도 70여억원의 납품대가 지급되지 못한 상황이다.

기아그룹 관계자는 "제도 금융권이 기아 어음 할인을 거부하면서
협력업체들이 사채시장에서 할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따라서
협력업체들이 소액어음을 요구하고 있어 어음장 부족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유전스 매입 중단 =기아그룹은 이날도 4백65만달러짜리와 1백10만달러
짜리 등 모두 5백75만달러 규모의 기한부수출신용장(유전스) 매입을
시중 은행에 요청했으나 네고를 거절당했다.

대부분 은행의 창구담당자들은 "1백만달러가 넘으면 곤란하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유전스 네고를 거절했으며 오후부터는 "이체시간에 늦었다"며
매입을 거부했다.

이에따라 제일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들이 본점의 방침과는 달리 일선
지점에서의 기아 신용장 매입을 중단,기아는 수출을 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크게 늘게 됐다.

기아 관계자는 "1억7천만달러 규모의 수출환어음(DA)이 할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유전스 네고까지 중단돼 수출목표의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밝혔다.

<>악화되는 기아그룹 분위기 =기아그룹에는 이날 "도장공장에 불이라도
지르겠습니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다.

한 직원 명의로 된 이 대자보에는 정부가 기아사태를 방관하고 있다며
3자 인수로 갈 경우 분신이나 방화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원협의회도 이날 정부와 금융권의 "기아목조르기"를 비난하고 단합을
호소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김정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