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동산 좀 사주세요"

"기업 인수를 부탁드립니다"

"돈이 필요하시면 우리 은행돈을 갖다 쓰십시오"

부도의 계절을 맞아 재계가 너나없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요즘, 이런
행복한 요청에 둘러싸인 기업들도 적지 않다.

고성장시대에는 보수적인기업운영으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재계에
경영위기가 닥치자 진가를 평가받게 된 숨은 경영우등생들이다.

이들은 금융계에서 특급대우를 받으면서 "귀족기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재무구조가 건실하다는게 공통점.

그동안 주력사업에만 매달려 한길을 달려오다보니 사업다각화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도 이들을 재계의 스타로 부각시키는 주요원인이다.

이들 기업들에게는 은행이나 기업체들로부터 M&A(기업의 인수합병),
부동산인수, 은행대출 요청등이 쇄도한다.

30대 그룹중 자기자본비율 1위인 롯데, 알짜 중견그룹으로 소문난 대성,
제일제당, 한일시멘트, M&A의 큰손 신동방그룹등이 이런 "귀족기업군"이다.

롯데는 30대 그룹중 최우량 재무구조를 자랑한다.

자기자본율 34.2%, 부채비율 1백92%.

기업의 건실도를 측정하는 이 양대 바로미터에서 롯데는 모두 1위에
랭크돼 있다.

금융비용부담율도 삼성(3.3%)에 이어 2번째(3.7%)로 낮다.

이런 "재력"덕분에 롯데그룹에는 은행이나 기업체들로부터 부동산을
사달라는 요청이끊이지 않고 있다.

진로의 아크리스 백화점등 유통업 부지등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매물이
나올때마다 은행이나 기업들은 매입우선협상대상 기업으로 롯데를 꼽는다.

"연탄업체"정도로만 알려졌던 대성그룹은 지난해말 기업들의 자금난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백40.9%에 불과한 부채비율, 41.5%에 달하는 자기자본비율, 약 3조원
어치의 막대한 부동산등.

이런 대성의 재무성적표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하루에도 수십통씩
기업을 사달라는 전화가 은행이나 기업들로부터 쇄도하고 있다"(김영훈
기획조정실사장).

대출을 해주겠다는은행들로부터의 요청도 심심찮게 들어온다.

대성은 현재 정보통신분야의 제조업체 인수를 고려중이지만 M&A시장이
공급과잉이다보니 느긋한 입장이다.

대성그룹의 기획조정실에서는 인수의뢰가 들어온 기업들을 대상으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한일시멘트도 은행으로부터 "돈 좀 갖다 써달라"는 부탁(?)을받을
정도로 손꼽히는 초우량 기업.

매출 4천억원에 부채비율이 1백21%로 재무구조가 튼튼하다.

특히 사업다각화를 추진중이라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은행들의 대출제의가
줄을 잇고 있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는 "주거래은행 외의 다른 시중은행에서도 대출제의가
종종 들어온다"고 말했다.

제일제당도 M&A때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대표적인 우등생기업.

삼성그룹으로부터 분가한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출자한데가 별로 없어
자금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금융계에서는 분석하고 있다.

특히 제일제당은 건설과 금융업이 없어 관련 M&A설때마다 이름이
등장한다.

신동방은 올초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M&A시도이후 "M&A의 큰손"으로
이름나면서 기업인수 의뢰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애경그룹에도 M&A중개업체
들의 문의가 심심찮게 들어온다.

반도체 후가공 공정인 마킹 장비 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에
랭크돼 있는 중소기업 동양반도체장비도 요즘들어 스타기분을 막끽하고
있다.

공장이 위치한 반월공단내 각 은행지점장들이 방문, "대출해 갈 계획은
없으신지요"라는 문안인사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

이밖에 대영이엔씨, 필라코리아, 대정기계등도 "부익부"현상이 집중되고
있는 초우량 중소기업들이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M&A나 부동산 매각등의 경우 대기업보다는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고 사업다각화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중견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 노혜령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