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그룹에 대한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또다시 구조조정 문제가
자동차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그 형태와 방향은 어떻게 나타날까.

물론 섣불리 예단할 성질은 아니다.

그러나 삼성의 보고서파문으로 한바탕 논리전을 펼쳤던 업계는 실제상황을
앞두고 수많은 변수를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신경이 곤두서 있다.

우선 기아그룹 문제가 어떻게 결론날지부터가 큰 변수다.

물론 기아그룹이 피눈물나는 자구노력으로 모든 계열사를 끌어안고
갈수도 있다.

기아로서는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

파장도 최소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두번째는 일부 계열사를 매각 처분하고 주력업체만 살아남는다는
시나리오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흘리는 이야기를 분석해 볼 때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세번째는 그룹을 통째로 넘기는 이른바 제3자 인수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재계 8위의 기업을 특정기업에 넘긴다는건 정부 스스로 논리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만큼 결코 쉽지는 않다.

어쨌든 두번째와 세번째 가설이 첫번째 시나리오보다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변화,다시말해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여기에 빠뜨릴수 없는 또하나의 변수가 있다.

쌍용자동차다.

이 회사는 지금 처절한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자생력을 찾기에는
아직 여러가지 난관이 남아있다.

쌍용은 또 살아남기 전략으로 자본제휴선인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방법을 비롯해 미국의 GM도 끌어들일 채비를 갖추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에 외국업체들마저 가세하는 형국이다.

따라서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향후 변화를 예상하기
힘든 세가지 변수가 한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의 방향을 주도할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각 기업의 움직임을 살펴볼때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을 가장
반기는 쪽은 삼성그룹이다.

삼성그룹은 자동차산업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모두 2조원이 넘는
투자를 해온데다 2001년까지 2조원을 추가로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 50만대의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땅값과 부지조성비만도 평당1백2만원이 투입된데다 초기 투자비가
엄청나 차량당 설비투자비는 8백만원이나 된다.

현대 아산공장의 대당 설비투자비가 2백40만원인데 비하면 효율을
생각하지 않은 투자라고 밖에 볼수 없다.

따라서 삼성으로선 기아그룹이 통째로 매물로 나올 경우 망설일 이유가
없다.

기아자동차가 아니더라도 아시아자동차가 따로 떨어져나와도 마찬가지다.

기아에 비해 훨씬 열악한 조건인 쌍용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삼성은 절박하다.

삼성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기존업체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대우경제연구소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할
경우 현대 대우는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기아를 인수할 경우 현대가 상품력이나 기술력에서는 계속 우위를
지키겠지만 판매력과 기업이미지에서 앞서가면서 중장기적으로 1위를 차지할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현대와 대우는 기아가 매물로 나와 삼성이 덤벼든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물론 기존 업체들은 현대-기아-대우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나가고
싶어한다.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에 걸려들기 직전 현대와 대우가 약 8백억원 규모의
사모전환사채를 사들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기아그룹이 공중분해될 경우 승용차부문은 현대가,
상용차부문은 대우가 각각 역할분담을 해서 넘겨받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또 포드와 같이 외국인 대주주가 취하게될 포지션도 기아의 향후구도에
적지않은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80년대초 산업합리화조치보다 더 큰 격변의 순간에 지금 우리 자동차업계는
직면해있다.

< 김정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