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파문은 비틀거리는 우리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총파업 생산차질 3조원, 수출차질은 5억달러를 넘었다.

수치로 표현 못하는 상처는 더하다.

기업인들은 의욕을 잃었고 대외신용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노동법 재개정을 이끌어낸 근로자들도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다.

5백39명의 근로자가 업무방해혐의 등으로 제소됐다.

회사로부터 징계당한 근로자도 1백54명에 이른다.

파업 참가 근로자들은 평균 51만원의 임금손실을 입었다.

이때문에 지금 모두가 "이젠 경제를 살릴 때"라고 말한다.

노동법개정문제를 빨리 끝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여전히 경제논리를 외면하고 있다.

노동법 재개정을 논의하는 국회에서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면피"하기 위한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이 짙다.

노동계는 재개정 노동법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복수노조를 전면적으로 허용하지 않은 점을 문제로 꼽는다.

민주노총은 경제 외적 사안인 교사 단결권인정요구에 매달리고 있다.

전교조의 실체를 합법화하라는 것.

민주노총은 25일 열린 중앙위원회에서 <>전교조 인정 <>정리해고제 철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배제 등을 재촉구하는 한편 이같은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으면 26일부터 단계적으로 4단계 총파업에 돌입키로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생산현장에서 다시 파업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
도 제기됐으나 정치권에 압박을 가한다는 의미에서 총파업 재돌입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계는 한마디로 허탈해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노동법을 재개정하고 있는 정치권이 지나치게 노동계를
의식한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키워겠다는 법개정 취지마저
퇴색했다고 야단이다.

"이렇게 고칠 바엔 내버려두는 편이 낫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경제계가 허탈해하는 보다 중요한 이유는 재개정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내줄 것 다 내주고도 또다시 "홍역"을 치러야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노동계가 총파업에 돌입한뒤 대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간다면...

이러다간 통제할 수 없는 파국이 올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한다.

D그룹 노무담당 임원은 "다시 총파업을 벌이면 끝장"이라고 단언했다.

총파업이 재개되면 한계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근로자들은 일터를
잃게 된다고도 했다.

경제계에선 "노동법싸움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노동부의 한 고위간부는 "4단계 총파업"을 준비중인 민주노총에 대해
"대국적 견지에서 신중히 행동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 간부는 "경제위기를 인정하면서도 총파업을 강행한다면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경총의 한 간부는 "무엇보다 기업인들의 의욕상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만나는 기업인마다 "국내에서는 제조업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 "제조업 공동화"가 가속화될 것 같다"고 벼랑끝에 몰린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제시했다.

"공장이 문닫고 나면 노동법이 아무리 좋게 고쳐진들 무슨 소용이냐"는
얘기다.

지방노동관서의 한 간부는 "요즘 기업인들은 울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노동법 때문에 또다시 시달려야 한다면 사업 그만두겠다는 기업인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온 국민이 불만을 삭이면서 힘을 합해도 어려운 판국에 노사가 다시
멱살잡이를 한다면 말이 되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요즘 노동부 상황실에는 노조가 무교섭.무쟁의.무파업이나 토요격주휴무
반납, 심지어 임금동결을 제의했다는 보고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회사가 기우는 것을 더이상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기업인들은 노조의 이런 움직임에서 한가닥 희망을 찾으려 하고 있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