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입사해서 동기들과 공장에 실습을 갔을 때였지요.

현장에서 저는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아마도 여자가 공장에 있으면 재수가 없다는 이유였던 것 같았어요"

이번 기아그룹인사에서 이사직에 올라 별을 단 기아중공업 조성옥씨(46)가
털어놓는 얘기다.

그녀가 기아중공업(당시 기아기공)에 입사하던 74년.

산업부흥기여서 기계과출신들은 졸업도 하기전에 입도선매당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같은 기계과전공의 그녀는 4,5군데 원서를 냈어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간신히 들어온 회사.

엔진공장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발령 3개월만에 기계와 상관없는 보직으로
밀려났다.

당시 기술담당상무였던 김선홍회장을 쫓아다니며 울며 매달려 겨우
공장으로 돌아온 그녀는 그때부터 일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아마도 현직 여성임원들중에 이같은 극적인 사연하나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기업풍토는 여성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얘기다.

국내 30대그룹의 여성임원들은 그 성격에 따라 다음 3가지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다.

우선은 오너의 친인척그룹.

정몽근현대산업개발회장 부인인 금강개발산업 (현대백화점)의 우경숙상무,
신격호롯데그룹회장의 장녀인 롯데백화점 신영자부사장, 현대종합목재의
이행자상무, 동양그룹 고 이양구회장의 둘째딸인 이화경동양제과전무,
금호문화재단을 맡고 있는 고 박인천회장 딸 박강자부사장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내조"에서 만족지 않고 뛰어난 경영감각과 실력을 살려 남편
혹은 남자형제들과 동등하게 경영일선에서 뛰고 있다.

여기에 오너급경영인들을 추가하면 대상은 훨씬 늘어난다.

대표적으로 대우 정희자회장(김우중회장부인) 신세계백화점 이명희부회장
(고 이병철회장 딸)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신세계백화점 이부회장은 금강개발의 우상무와 롯데백화점
신부사장과 함께 백화점 3인방으로 불리며 백화점운영의 각종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브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번째 그룹으로는 보험설계 미용상담등 소비자 상대의 최일선에서 출발,
독보적인 영업력을 인정받아 별을 단 경우.

태평양의 이보섭이사, 삼성생명의 임춘자이사, 삼성화재의 장선희이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넓은 발, 탁월한 대인관계, 억척스런 부지런함으로 숱한
영업사원들을 제치고 영업국장 지점장을 거쳐 이사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태평양 이이사의 경우 고졸출신으로 결혼하면 퇴직한다는 각서까지
쓰고 입사했으나 태평양최초의 여성과장, 차장, 부장을 차례로 거쳐
지난 91년 입사 26년만에 이사대우(소비자상담실장)에 올랐다.

세번째로는 남자사원과 함께 신입 혹은 중견사원으로 출발, 전문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대망의 별을 단 케이스.

최근들어 각 기업마다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앞서 거론한 기아중공업 프레스담당 조이사.

삼성데이타시스템의 전산담당 주혜경이사도 마찬가지다.

동부엔지니어링의 조경담당 채선엽이사, 한라그룹 비서실 이은정상무등은
직종이 특수하긴 하지만 이 그룹에 속한다고 볼수 있다.

30~4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별을 단 이들은 대부분 공채출신으로 일반
관리직이 아닌 전문기술로 승부를 걸어 남자들과의 대등한 경쟁을 뚫었다.

채이사는 고려대 농대를 졸업한뒤 서울시에서 목동개발계획 남산제모습
찾기 실무추진반등 조경분야를 담당하다 91년 영입됐다.

현재 동부그룹이 추진하는 각종 조경계획및 감리 평가를 맡고 있다.

더블액션라인 개발로 과기처장관상을 받은 바 있는 기아중공업 조이사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일반관리직보다 기술직을 택해 자신의 전문기술을
꾸준히 키우는 것이 능력을 인정받기 쉽다"라고 여성후배들에게 권고한다.

< 권수경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