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의 얼굴마담" "총알받이" "오픈 로비스트"..

흔히들 업계 단체의 상근부회장을 일컫는 말이다.

결과에 대한 모든 공은 회장에게 돌아가니 "음지의 얼굴마담", 비난은
한 몸에 받아야 하니 "총알받이"다.

드러내놓고 기업과 정부를 연결하는 역할에는 "공개된 로비스트"라는
또다른 이름이 붙는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 하나 협회 상근부회장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기업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기업을 누구보다 앞장서 대변하는
묘한 존재"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상근부회장들의 이력에는 한가지 큰 특징이 나타난다.

업계를 대표하는 얼굴이면서도 실제로 해당 업계 출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반면 전직 관료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통상산업부 출신들의 비중이 절대다수다.

유득환 무협 부회장은 통산부에서도 상역파트에서 뼈가 굵어온 통상관료
출신.

네덜란드상무관을 비롯해 영국과 미국상무관, 상역국장 등을 거쳐
제1차관보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무협 부회장으로 영입된 것도 그만큼 통상문제에 해박하기 때문이다.

경총의 조남홍부회장도 통산부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최근들어 노사문제 전문가로 변신,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
이사로 선임되는 개인적 영광도 안았다.

경제 5단체의 상근부회장 가운데 통산부출신은 그래도 이들 2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업종단체의 경우 통산부출신이 아니면 아예 명함을 내밀지
못할 정도다.

기계공업진흥회 김순부회장, 전자공업진흥회 이상원부회장,
자동차공업협회 정덕영부회장, 유화협회 유인봉부회장, 철강협회
서정욱부회장, 항공우주협회 곽병구부회장, 철도차량협회 김용대부회장 등이
모두 통산부 관료 출신.

화섬협회 이만용부회장은 금성반도체 금성정보통신 등 업계 사장을
지냈지만 역시 뿌리는 통산부다.

이렇게 따져보면 상근부회장 직제를 두고 있는 10여개 업종 단체중
80%가 통산부 출신인 셈이다.

통산부 전직 관료외에도 대한상의 김정태부회장이 포르투갈과 인도
대사를 거친 정통 외교관료 출신이고 기협중앙회 이원택부회장은 서울시에서
뼈가 굵은 행정관료 출신이다.

석유협회 홍찬기부회장은 민주산악회 출신이며 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부회장은 한때 국방부에 몸을 담기도 했었다.

전직 관료들, 특히 통상산업부 출신들이 재계 주요 단체의 부회장 자리를
독식하고 있는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단체 부회장의 역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대정부 관계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간혹 부회장 자리를 맡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부와의 대화
미숙으로 자리를 오래 지키는 경우가 흔치 않다.

섬유산업연합회의 경우 95년 12월 이후 1년 동안이나 부회장직이
공석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섬산련 노조가 통산부에 상근부회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까지 했다.

강한 부회장이 없다보니 사공이 많아져 내부 살림살이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는게 노조측의 변이었던 것.

통산부는 지난연말 인사에서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장석환씨를
섬산련부회장으로 내정했다.

물론 관료 출신들의 협회 포진이 때때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업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협회부회장이면서도 여전히 정부관료의
시각으로 사안을 처리하려는 경우등이 그렇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들의 관료경험을 살려 업계의 권익옹호를
잘 대변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