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금융인들은 아시아시장을 자기네 "안방"이라 말한다.

자국 기업들이 오래전부터 아시아 각국에 생산거점을 이전하거나 현지기업
과 합작, 터를 다져놓았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영업하기가 수월하다는
얘기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지금 거대한 부실채권에 발목이 묶여 거동이 불편하다.

그런데도 지점과 인원을 늘리는 등 아시아시장 공략에는 많은 힘을 쏟고
있다.

시장 전망이 밝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기침체로 국내금융시장이 위축돼
있어 수익성 높은 아시아시장 공략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94년말 현재 11개 시중은행들의 아시아 거점은 3백82개.

5년전보다 83개나 늘었다.

이곳에 배치된 인원은 9천3백50명으로 42% 증가했다.

국내에서 조직과 인원을 줄이고 있는 추세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금년 상반기중 일본 대장성은 자국 은행들에게 24개 해외거점(지점 사무소
출장소) 개설을 승인했다.

이 가운데 22개가 아시아지역 거점이다.

선발대인 시중은행들은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등 잠재시장을 집중공략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다 일본 기업들이 이 지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고 있어 금융기관들이 할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들어 외국은행 진출을 허용한 필리핀 진출이 두드러진다.

4월중 도쿄은행이 일본 은행으로는 처음 수도 마닐라에 지점을 개설한데
이어 6월에는 후지은행, 8월엔 스미토모은행이 지점을 열었다.

다이이치칸쿄 아사히 다이와 등도 연내에 사무소를 개설한다.

베트남의 호치민 하노이에는 미국의 엠바고(수출금지조치) 해제를 계기로
작년부터 일본 은행들이 앞다퉈 사무소를 차렸다.

도쿄은행과 후지은행은 연내에 각기 호치민과 하노이에 지점을 개설한다.

미얀마의 랑군에는 도쿄은행이 지난 8월 맨처음 사무소를 열었고 후지은행
도 연내에 사무소를 차린다.

해외진출에 소극적이던 지방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도 홍콩 상해 등
아시아 금융센터를 찾기 시작했다.

상반기중 상해에는 4개 은행, 홍콩에는 2개 은행이 대장성으로부터 사무소
개설 승인을 받았으며 3개 은행과 전국신용금고연합회는 홍콩사무소를
지점으로 승격시키기로 했다.

증권회사들도 아시아시장 공략에 나섰다.

노무라증권은 7월말 베트남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에 가입할 즈음
베트남 정부와 포괄협력협정을 맺고 외국채권 발행, 합작회사 설립, 증권
시장 개설 등을 돕기로 했다.

야마이치증권도 이 무렵 중국국가개발투자공사와 상호협력협정을 체결
했으며 다이와증권은 3월중 필리핀개발은행과 합작으로 마닐라에 증권회사를
세웠다.

일본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 때문에 겨를이 없는 가운데서도 아시아시장
공략을 강화한 데에는 자칫 미국 유럽 은행들에 "안방"을 내주게될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구미은행들도 아시아의 고성장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이들도 거점과 인원을 늘리며 아시아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위기감은 인도시장에서 뚜렷히 드러난다.

인도증권거래위원회에 등록한 해외기관투자가는 7월말 현재 3백23개.

이 가운데 일본 투자가는 7개에 불과하다.

게다가 노무라 이외에는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인도 기업들이 발행하는 해외신탁증권이나 유러전환사채 등의 인수업무는
영국의 쟈딘플레밍 등 구미의 금융업체들이 휩쓸고 있다.

인도 뿐이 아니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금융주간지 IFR에 따르면 금년 상반기중 아시아지역에서
국제협조융자 주간사업무를 획득한 건수는 미국의 시티코프가 36건으로
일본 은행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밖에 구미은행으로는 네델란드의 ABN암로, 프랑스의 소시에테 제네랄,
미국의 뱅크아메리카 등이 10위권에 포함됐다.

일본 은행들은 풍부한 자금을 갖고도 "안방"에서 구미은행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일본 금융기관들로서는 구미시장을 공략할 겨를이 없다.

반면 구미은행들은 일본의 "안방"인 아시아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김광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