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안보이는 달러폭락은 달러중심의 국제기축통화제 붕괴를 예고하고
있다.

달러폭락지속은 달러가 더이상 믿을만한 통화가 아니라는 시장분위기의
반영이다.

연초 달러당 1백1엔대에 있던 달러가치가 불과 2개월여만에 92엔대로
대폭락한 것은 달러중심의 국제외환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마르크에 대해서도 한때 전후 사상최저인 달러당 1.3870대로 추락한 것은
달러의 위상에 금이 가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특히 마르크는 달러에 대해서는 물론 파운드(영국) 리라(이탈리아) 페세타
(스페인)등 거의 모든 유럽통화에 대해서도 사상최고치를 연일 경신, 외환
시장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달러폭락이 계속되면 미수입품가격상승으로 물가가 불안해지면서 미주식과
채권값이 폭락하고 미증시폭락은 세계금융시장에 매도세력만 있고 매입세력
은 없는 국제금융공황사태를 촉발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지난주 중반부터 시작된 달러폭락은 중앙은행들의 달러지지노력에도 불구
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6일 런던과 뉴욕시장에서 달러는 92.45엔까지 폭락, 빠르면 이번주중에라도
90엔선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증폭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가 이달중에 84엔및 1.25마르크까지도 떨어질수
있다는 극단론을 펼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제동장치가 풀려버린 달러하락세는 달러가 세계통화의 중심역할을
상실하고 있다는 움직일수 없는 증거다.

금융전문가들은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그 위치를 상실하는 조짐이
최근들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미레먼 브러더스증권의 외환책임자 제레미 호지스는 "이제 달러가 더이상
확고부동한 준비통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지난 80년대초까지만 해도 달러는 각국 외환보유액의 80%이상을 담당
했었다.

하지만 90년대들어 달러비중은 60%수준으로 떨어졌다.

달러가 비운 자리를 엔과 마르크가 메꾸고 있다.

달러를 축으로 했던 국제외환거래체제가 달러-엔-마르크의 3개 영역으로
분할되는 상황이 이번 달러폭락사사태로 더 빨라지게 됐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경제가 국제화되고 다변화되면서 달러화는 지금까지의 유일무이한
"세계안전통화"로서의 매력을 상실중이다.

최근 국제부동자금이 달러표시 자산에서 이탈, 마르크나 엔화표시 자산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는 것은 달러가 더이상 유일무이한 기축통화가 아님을
시사한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위상에 금이 가고 있다는 조짐은 이미 훨씬 전에
엿보였다.

지난 70년 8월15일 국제금융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닉슨
전미국대통령의 달러.금태환정지선언이 바로 그것이었다.

브레튼우즈체제가 규정한 금과 달러의 교환의무를 스스로 포기, 세계중심
통화로서의 달러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그후 지난 85년 9월 미국의 우격다짐으로 달러가치를 크게 끌어내린
플라자합의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위치를 격하시킨 또 하나의 조치였다.

이 합의로 달러가치는 지난 80년대말 엔과 마르크에 대해 거의 절반수준
으로 떨어졌다.

그동안 국제교역의 최대 결제수단으로서, 또 세계정세가 불안할때마다
국제자금의 안전한 피난처로서 기축통화역할을 해온 달러가 연일 폭락하자
달러중심의 국제외환체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여름 달러가 1백엔밑으로 떨어졌을때 금융전문가들사이에 달러를
중심으로 한 변동환율제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연차총회에서
이같은 주장은 먹혀들지 않았다.

달러가 92엔대로 폭락한 6일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EU)전집행위원장은
국제환율체제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엔.마르크대반격으로 달러의 기축통화위치가 흔들림에 따라 달러중심의
국제외환체제를 개편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들것으로 보인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