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사진=뉴스1
1만km 이상 주행한 중고차를 사려면 새차와 비슷한 값을 주거나 오히려 100만~200만원의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차량 반도체 부족 사태로 신차 출고 대기가 워낙 길어지면서 빚은 이색 풍경이다. 이러한 중고차 가격 역전 현상은 국산차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18일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에 따르면 현대차 준중형 세단 올 뉴 아반떼(CN7)는 2021년식 1.6 인스퍼레이션 기준 2467만원에 시세가 형성됐다. 신차 가격(2453만원)보다도 살짝 높은 수준이다. 매물로 올라온 아반떼 가운데 한 차량은 지난해 7월 출고돼 1만8000km를 주행했지만 2380만원에 등록되어 있다. 동일 트림·옵션 기준 신차가는 2482만원으로 중고가와 100만원 가량밖에 차이 안 난다.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 상황도 비슷하다. 2019년 출고돼 2만4000km를 주행한 더 뉴 그랜저 2.5 캘리그래피 트림은 425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동일 트림·옵션 기준 신차가는 4408만원으로 가격 차는 약 160만원에 불과하다. 신차 가격에 현대차의 공식 할인을 적용하면 차이는 100만원 내외로 더 줄어든다. 2년 가까이 탔지만 감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에 등록된 현대차 투싼 매물 가격대. 사진=엔카닷컴 갈무리
중고차 플랫폼 엔카닷컴에 등록된 현대차 투싼 매물 가격대. 사진=엔카닷컴 갈무리
중고가가 조금이라도 저렴한 아반떼나 그랜저는 그나마 나은 상황이다. 출고 대기기간이 긴 차량은 중고차가 더 비싸다. 같은 플랫폼에서 현대차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투싼은 1만3000km 주행한 1.6 2WD 인스퍼레이션 모델이 3349만원에 등록됐다. 같은 트림·옵션 기준 신차가는 3285만원. 1만km 넘게 탔지만 가격이 더 오른 것이다.

기아의 중형 SUV 쏘렌토 하이브리드 1.6 4WD 시그니처도 1만2000km를 주행한 차량이 4990만원에 판매 중이다. 동일 트림·옵션 기준 신차가는 이보다 낮은 4904만원에 그친다. 1만km를 주행한 쏘렌토 2.5T 2WD 시그니처 모델 역시 신차가보다 20만원 낮은 4330만원에 등록됐다. 기아의 할인혜택을 감안하면 신차보다 비싸다고 할 수 있다.

신차를 능가하는 중고차 가격 고공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차 출고대기가 풀리지 않고 있는 탓이다. 지난 4월 현대차 투싼을 계약한 한 소비자는 대리점으로부터 올 12월께나 차량이 생산될 것이란 안내를 받았다.

그는 "신차검수, 틴팅(선팅)과 블랙박스 장착 등을 감안하면 12월에라도 차량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국산차를 주문하고 8개월 넘게 기다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사진=뉴스1
서울 성동구 장안평 중고차 매매시장 모습. 사진=뉴스1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공급난 지속 여파로 국산차 주요 차종들의 출고대기 기간이 4개월을 넘기고 있다. 기아 셀토스나 카니발은 4개월 이상, 기아 K8·제네시스 GV70·현대차 코나 하이브리드 등은 5개월 이상 기다려야 한다.

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 K8 하이브리드의 출고대기 기간도 6개월을 넘어선다. 특정 트림이나 색상을 고집할 경우 출고대기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비인기 재고 차량이 아닌 이상 지금 주문하면 올해 안으로 받기 힘들다는 얘기다.

반도체 공급난이 계속되는 만큼 이러한 출고대기 문제는 단기간 내 해소되긴 어려울 전망.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산업동향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 공급난이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완성차 업계가 반도체 내재화를 추진하고 나섰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 데다, 낮은 부가가치와 수율 탓에 반도체 업계 투자나 생산동기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기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클린룸에서 직원이 기판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도 2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반도체 업계가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1~2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급난이 해소되려면 생산량을 늘리고 기존에 적체된 물량도 해소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2023년까지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출고 적체가 단기간 해소하기 어려운 만큼 중고차 가격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 장거리 이동이 늘어나는 여름 휴가철과 추석 연휴에는 중고차 수요가 늘어난다.

한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중고차 가격이 올라갔다가 지금은 상승세가 살짝 꺾인 상태"라며 "하지만 딜러들 매입가는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재차 증가하면 중고차 가격은 더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