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알코올성 지방간으로 알려진 대사이상 관련 지방성 간질환(MASLD) 환자에게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도록 했더니 간 속 지방이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날 미국의사협회지 자마(JAMA)에 MASLD 환자를 대상으로 한 저용량 아스피린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공개됐다. 미국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의료진들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간경변 없는 18~70세 MASLD 환자 8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아스피린 81mg을, 다른 그룹은 위약을 6개월 간 매일 한번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신약 개발 연구처럼 무작위 배정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의 1차 평가 지표는 지방간 영상 검사로 알려진 자기공명분광법(MRS)을 활용해 지방량 감소를 확인하는 것이었다.평균 연령이 48세인 임상 참여 환자 80명 중 71명이 6개월 추적관찰까지 마쳤는데 아스피린 복용 군은 간 속 지방량이 6.6% 줄었고 가짜약 복용군은 3.6%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두 그룹을 비교하면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군은 가짜약 복용군보다 지방량이 평균 10.2% 줄었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간 속 지방량이 30% 이상 줄어든 환자 비율도 아스피린 복용군에선 42.5%, 가짜약 복용군은 12.5% 였다. 30% 정도 차이가 났다는 의미다. 두 그룹 모두 참가자 중 13명이 이상 반응을 호소했지만 심각한 이상사례는 아니었다. 두 그룹 모두 상기도 감염을 호소한 환자가 가장 많았다. MASLD은 만성 간 질환의 흔한 원인이다. MASLD 환자 3분의 1은 지방간이 진행해 간경변, 간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이를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치료하는 약물은 부족한 상태다. 연구팀은 저용량 아스피린이 MASLD를 치료하고 간섬유증, 간경변 등으로 진행하는 것을 예방하는 저렴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지방간염 동물시험에서 아스피린은 간 세포에 지방이 쌓이고 염증이 생기는 것을 막아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스피린은 염증성 사이클로옥시게나제(cyclooxygenase)-2와 혈소판 유래 성장인자 신호 전달을 억제해 항염증·항종양 효과를 냈다.연구팀은 "매일 저용량 아스피린을 6개월 간 복용한 MASLD 환자는 간 지방량이 크게 줄었다"면서도 "결과를 명확히 확인하려면 더 많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지난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신약 개발사 길리어드사이언스 본사 입구에 들어서자 높이 3m가 넘는 붉은 리본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에이즈(AIDS) 환자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를 기리는 형상이다. 길리어드는 만성질환처럼 평생 약을 써야 하는 HIV를 완치시키는 약 개발에 승부를 걸었다. 본사 입구 동상은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물이다.HIV 치료제 시장 독보적 1위리본 형상 아래에는 길리어드가 지금까지 개발한 약들의 발자취가 필름 형태로 새겨져 있었다. 1996년 길리어드가 처음 선보인 망막염 치료제 ‘비스타이드’부터 가장 최신 약인 HIV 치료제 ‘선렌카’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1987년 설립된 길리어드는 HIV 치료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글로벌 1위 기업이다. 시장점유율은 50%를 웃돈다. 혁신적인 신약을 내놓으며 시장을 주도해 온 결과다. 이 회사의 ‘빅타비’는 하루 알약 25개를 먹던 환자가 단 한 알만 복용할 수 있게 해준 약이다.제라드 베턴 길리어드 HIV임상개발 총괄 부사장(사진)은 “길리어드는 30년 넘게 HIV 치료제를 개발해 오고 있다”며 “현재는 HIV를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처럼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아예 완치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HIV 환자들에 새 삶 기회길리어드는 최근 미국 덴버에서 열린 바이러스학회에서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임상 결과를 공개했다. 1주일에 한 번 알약을 먹거나 1년에 두 번 맞는 주사로 기존의 매일 복용하던 약(빅타비)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몸속 바이러스가 거의 없다시피 유지돼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외부로의 전염 가능성도 없었다. 길리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완치 약까지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베턴 부사장은 “완치 약을 개발하고 있지만 HIV를 만성질환처럼 유지·관리하게 해주는 기존 약의 효능이 우수하고 안전해 기존 약의 안전성을 뛰어넘는 것이 당면한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HIV를 천연두처럼 인류 역사에서 몰아낼 때까지 힘쓸 것”이라고 했다.신약 벤처의 ‘롤모델’길리어드는 신약 벤처기업의 대표적인 롤모델이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항바이러스제’ 한우물을 파서 글로벌 톱10 제약사 반열에 오른 드라마틱한 성장 이력 때문이다.길리어드는 설립 초기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도전했다가 투자금을 날리기도 했다. 반전의 시작은 독감약 타미플루였다. 2009년 신종플루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잭팟’을 터뜨렸다. 그해에만 31억5000만달러(약 4조1280억원)어치가 팔렸다.두 번째 히트작은 C형간염 치료제 ‘소발디’였다. 방치하면 간암으로 악화될 수 있는 C형간염 치료율은 50%에 그쳤다. 소발디는 치료율을 95%까지 끌어올렸다. C형간염 완치 시대를 연 셈이다. 출시 첫해인 2014년에만 100억달러 매출을 올리며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길리어드는 항암제 시장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2017년 120억달러를 들여 카이트파마를 인수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예스카타’는 이 분야 글로벌 1위다. 유도미사일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유방암 치료제 ‘트로델비’도 주목받는다.길리어드는 연구개발(R&D)에 공격적인 투자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은 21.2%다. 매출 1위인 화이자(18.3%)보다 높은 수치다.샌프란시스코=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당뇨·비만 치료제 ‘위고비’ 개발사 노보노디스크가 표적 단백질 분해(TPD) 의약품 개발업체 네오모프와 2조원에 달하는 공동개발 및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했다.네오모프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노보노디스크와 분자접착제 기반 TPD 약물을 개발, 상용화하기로 협력했다고 발표했다. 네오모프는 2020년 설립돼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기존 약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표적들 위주로 치료제를 연구한다. 아직까지는 전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계약에 따르면 네오모프가 특정 표적을 발견하고 임상을 주도할 예정이다. 노보노디스크는 화합물에 대한 추후 임상 및 상업화에 대한 권리를 독점적으로 갖게 된다. 전체 계약 규모는 14억6000만달러(약 1조9450억원)다.필 챔버레인 네오모프 최고경영자(CEO)는 “당뇨·비만 및 희귀 혈액질환 분야에서 세계적인 제약사로 꼽히는 노보노디스크와 협업하게 돼 기쁘다”며 “네오모프의 독자적인 분자접착제 플랫폼과 노보노디스크의 노하우가 결합되면, 암을 포함한 새로운 치료 분야로 확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PD란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방식으로 치료하는 기술이다. 질환을 유발하는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없애버리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분자접착제란 원래 상호작용하지 않던 단백질들이 서로 가까이 붙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약물이다. TPD 의약품을 만들 때 기반기술로 활용된다.노보노디스크뿐 아니라 화이자, 미국 머크(MSD), 로슈 등 다양한 글로벌 대형 제약사(빅파마)들이 TPD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화이자는 TPD 기술을 활용한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2021년 미국 바이오벤처와 2조원 규모의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국내에서는 SK바이오팜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TPD를 삼았다. 지난해 6월에는 620억원을 투자해 미국 TPD 전문 바이오기업 프로테오반트를 인수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