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석 칼럼] 세상은 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매독(梅毒)은 ‘매화를 닮은 독’이라는 뜻이다. 이 병에 걸리면 피부에 매화꽃 모양의 반점이 생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증상은 끔찍하다. 가려운 부스럼으로 시작해 뼈가 드러날 정도로 피부가 썩어들어간다. 의술이 발전하기 전엔 가장 두려운 병 중 하나였다. 특이한 건 나라마다 다른 별칭으로 불렸다는 것.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폴란드에서는 ‘독일병’, 독일에서는 ‘프랑스병’,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병’이라고 했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쳤을 때 인간은 만만한 희생양을 찾아 비난을 쏟아낸다. 평소 마뜩잖았거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라 이름이 매독이라는 끔찍한 병에 달라붙은 이유다.

비난은 거의 본능이다. 길거리 선술집만 들여다봐도 금방 확인 가능하다. 열에 아홉은 누구 씹느라 오징어는 뒷전이다. 회사 상사 헐뜯다가 숨이 차면 축구 선수 흉보고, 곧이어 정치인을 도마에 올린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지만,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정보가 생존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 누굴 믿을 수 있는지,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불분명하면 조직을 유지하기 힘들다.

인간의 비난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기 중 하나가 선거철이다. 하나가 죽어야 하나가 사는 냉정한 승부. 뒷담화고 앞담화고 가릴 여유가 없다. 요즘이 딱 그렇다. 총선을 앞둔 한반도뿐만 아니다. 미국 인도 등 주요국이 선거로 몸살을 앓았거나 앓고 있다. 나라는 쩍하고 두 동강이 났다. 서로서로 편을 갈라 물어뜯고 할퀴느라 사방이 아수라장이다. 그동안 어떻게 같이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비난의 대상은 종종 사람에서 집단으로, 다시 국가나 인종으로 확대된다.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고, 한일전 축구 시청률이 유독 높은 이유다. 유달리 후각이 예민한 정치인들이 이런 먹잇감을 놓칠 리 없다. 각종 집단과 개인, 그리고 국가에 서슴없이 ‘반(反)’이라는 글자를 붙이고 분노를 자극한다. 오랜 기간 ‘반미(反美)’와 ‘반일(反日)’ 전략이 먹히고, ‘반윤(反尹)’ ‘반명(反明)’이라는 단어가 한국 정치판의 주요 키워드가 된 것도 이성적 설득보다 감성적 분노가 힘이 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난으로 달궈진 분노는 사회적 폐해가 크다. 우선 본질적 문제를 비켜 가게 만든다. 욕만 실컷 하고 해결책은 찾지 못한다. 세금 논란이 대표적 예다.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상속세를 낮추자는 말을 꺼내면 당장 ‘반재벌’ ‘부자 감세’ 등의 프레임에 갇혀버린다. 법인세 인하는 말도 꺼내기 힘들다. 비난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이성적인 접근은 원천 차단된다. 이웃 나라와의 외교적 협력이라는 복잡다단한 문제도 ‘반미’나 ‘반일’이라는 구호에 먹히면 힘을 잃는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산업 구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게 산더미지만 ‘반(反)’이라는 글자 하나에 모든 논의는 산으로 간다.

비난의 반대급부도 독성이 세다. 상대편을 깎아내리는 만큼 우리 편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된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를 덮어놓고 지지하는 ‘MAGA’나 한국의 ‘개딸’, ‘태극기부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스웨덴의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의 지적은 신랄하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개인이나 집단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해 비난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세상사는 항상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