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까지 집단행동 움직임에 "걱정 태산, 피해는 환자 몫""아픈 것도 서러운데, 의사들 허락 맡고 아파야 합니까."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에 이어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내기 시작한 26일 낮 광주 동구 전남대병원.당뇨병을 앓는 70대 노모를 휠체어에 태워 부축하던 이모(45)씨는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에 연거푸 한숨을 내뱉었다.사흘 전 진료 예약을 한 뒤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 환자가 늘어나면서 예정 시각보다 뒤늦게서야 약을 처방받을 수 있었다고 푸념했다.진료 차질이 비교적 덜 빚어지는 2차 병원이라도 갈까 했는데, 그동안의 진료 기록이 없는 데다 당뇨병 관련 진료 업무를 보는 병원도 드물어 체념했다고 했다.이 씨는 "의사들이 과연 본인들 자녀 또는 가족이 아팠어도 병원을 떠났을지 의문이다"며 "환자를 내팽개친다고 정부와 합의점이 찾아지는 것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췌장염으로 진료를 본 뒤 병원 밖으로 향하던 곽모(70) 씨는 응급상황 발생 시 진료받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미 복귀 전공의는 차치하더라도 병원에 남아 진료를 보던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에 두려움까지 든다고 했다.곽씨는 "몸에 있는 종양이 악성이라는 검사 결과가 나오면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며 "단순 외래 진료도 연기되는데, 수술까지 뒷순위로 밀릴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전남대병원과 같은 3차 병원인 조선대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고관절을 다친 시어머니와 접수창구에 앉아있던 윤모(28) 씨는 장기화하는 의정 갈등을 '싸움'이라고 표현하며 볼멘소리를 냈다.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병원을 떠난 의사들이나 충분한 논의·대화 없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정부 모두 질책했다.윤씨는 "의사도, 정부도 양보할 생각이 없기에 이 사단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며 "양보 없는 의정 갈등이 결국 싸움으로 변했고, 파행으로 번질 것이다"고 비판했다.또 "이런 상황에선 나 스스로가 다치지 않기 위해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아플까 두렵다"고 덧붙였다.집단행동에 들어간 전공의들에 이어 광주지역 의과대학 교수들도 속속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의대 교수 비대위는 오는 29일까지 교수들의 사직서를 받은 뒤 의과대학에 일괄 제출할 계획이다./연합뉴스
정부가 사직서를 제출한 의대 교수와 전공의들을 향해 조건없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이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한 것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을 열고 "의료계에서는 가슴 졸이며 애태울 환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조건 없이 대화에 임해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현재 의대 교수와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정부가 먼저 철회해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박 차관은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내지 마시고, 학교와 병원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며 "진정성 있는 자세로 조건없이 대화에 임할 것을 제안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설득하고, 대화의 자리로 나와 제자들이 더 나은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의료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했다. 또 "제자들에게 환자 곁을 지키는 진정한 의사로서의 바른 길을 가르쳐 주셔야 할 교수님들마저 집단 사직을 하겠다는 것을 국민들은 납득하시지 못한다"고 지적했다.전공의 복귀도 거듭 촉구했다. 박 차관은 "어떤 이유로도 전공의의 집단행동은 정당화되지 않는다"며 "조건없이 현장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이라도 속히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면허정지와 관련해 주문한 '유연한 처분'과 관련해선 "현재 (여)당과 논의하고 있다"며 "처분 시기(연기), 처분 기간(단축) 등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유연한 처분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3월에 돌아오더라도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기존 원칙은 현재로서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의대 증원 결정과 관련해선 "대학입학전형 반영 등 후속 절차를 차질없이 진행하고 있다"며 "5월 내로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보다 더 설득력 있고 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것에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정부는 현장에 남아있거나 복귀를 원하는 의료진에 대한 보호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익명으로 운영되는 전공의 보호·신고센터의 접수 대상자도 기존 '전공의'에서 '의대 교수'로 확대한다. 최근 일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는 교수들을 비난하고 압박하는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박 차관은 "앞으로도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려는 대학생과 환자 곁을 지키려는 전공의, 교수님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