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네타냐후 또 충돌…안보리 결의안에 '방미 취소' 맞불
이스라엘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휴전 촉구 결의안이 채택된 데 반발해 고위급 대표단의 방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백악관이 이에 대해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또 한 차례 공개적인 갈등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총리실은 25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성명을 내고 “미국의 입장 변화를 고려해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애초 이스라엘은 전쟁 내각 일원이자 네타냐후 총리의 최측근인 론 더머 전략담당장관과 자히 하네그비 국가안보보좌관을 이번 주 중 미국에 보내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무력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이는 불과 약 일주일 전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의 통화에서 합의된 사안이다.

그러나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 오는 4월 9일까지 이어지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과 조건 없는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채택되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안보리에서 가자 전쟁 관련 결의안이 채택된 건 처음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이 결의안은 반드시 이행돼야 하며, 실패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적었다.
바이든·네타냐후 또 충돌…안보리 결의안에 '방미 취소' 맞불
이사국 15개국 중 14개국이 찬성했고, 상임이사국으로서 세 차례 거부권을 행사했던 미국은 이날 기권으로 방향을 틀었다. FT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내용의 안보리 결의안을 미국이 통과시킨 건 2016년 이후 8년 만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정착촌을 건설한 것이 불법이라며 거부권 대신 기권표를 택했다.

존 커비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안보리 결의안에는 휴전과 인질 석방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관점이 공정하게 반영됐다”며 미국이 입장을 바꿨다는 이스라엘 총리실의 주장에 반박했다. 커비 보좌관은 기권 결정에 대해 “하마스에 대한 명시적 비난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정부의 대표단 파견 취소 결정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결의안이 휴전과 인질 석방을 명시적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그는 “하마스로 하여금 국제사회의 압력을 등에 업고 인질 석방 없이도 휴전에 이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는 “즉각적인 적대 행위 중단 요구를 환영한다”며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전원을 철수시키는 영구적 휴전에 도달할 필요성이 있다”는 입장을 냈다.

이스라엘 정부 대표단의 방미는 무산됐지만, 이미 미국을 방문 중인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고위급들과 연쇄 회동할 예정이다. 갈란트 장관은 이날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난 뒤 26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대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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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갈란트 장관은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가자지구에 인질이 남아 있는 한 우리에겐 전쟁을 멈출 도덕적 권리가 없다”며 “가자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와) 북부에서의 전쟁에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사태에 대해 “이스라엘에 라파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할 것을 촉구해 온 백악관에는 중대한 좌절”이라고 평가했다. WSJ는 “바이든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가 모두 국내에서 정치적 역풍을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두 지도자 간 균열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휴전 결의안 통과는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 교체까지 요구하고 있는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표심을 의식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네타냐후는 방미 일정 취소로 맞불을 놓으면서 극우 성향 집권당에서의 존재감을 지켜냈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10월 7일 개전 이후 하마스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 권리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한 후 파열음이 노출됐다. 가자지구와 이집트 사이의 유일한 국경 통로가 있는 라파에는 최대 140만 명의 피란민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지상전이 단행될 경우 민간인 피해를 우려해 이스라엘을 만류해 왔다.

장서우 기자 suw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