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흐물대다 결국 고사…지난해 12월 고온→한파 원인
전북 양파 재배 면적의 25% 피해 "농민들 막대한 손해"
[르포] "애지중지 키운 양파인데"…냉해로 냉가슴 앓는 농민들
"지난해 겨울부터 애지중지 키웠는데 참, 허탈허죠…."
지난 21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너른 양파밭.
흑갈색의 토양 위로 푸른 양파 줄기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농민 정영상(63)씨가 양파 줄기를 뽑아 들자 시커먼 뿌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맘때면 새하얀 뿌리가 길게 뻗어 나와 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죄다 물기를 머금어 거의 연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정씨는 이를 '무름병'이라고 했다.

뿌리에 물기가 차 흐물흐물해지면서 결국 고사하는 식물 병해다.

그가 뽑는 양파는 죄다 뿌리가 힘없이 물러져 있었다.

어떤 양파는 뿌리가 아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간혹 겉은 멀쩡해 보이는 양파가 눈에 띄었지만, 뿌리를 쪼개보면 여지없이 물이 들어차 있었다.

정씨가 경작하는 양파밭 1만1천여㎡(3천600여평)가 대부분 이렇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10도가 넘는 포근한 날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바람에 양파가 '냉해'를 입은 것이다.

12월 중순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인해 양파의 수분 함량이 높아진 것도 냉해 피해를 키운 요인이 됐다.

이대로라면 수확기(6월 중순)에 건질 수 있는 양파는 거의 없다는 게 정씨의 말이다.

그는 "양파는 월동작물인데 지난해 기온이 널뛰어서 냉해 피해가 커졌다"며 "여기 농민들이 다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결국 정씨의 양파밭 대부분은 최근 지역 농협으로부터 '경작 불능' 판정을 받았다.

바로 옆의 양파밭도 마찬가지.
[르포] "애지중지 키운 양파인데"…냉해로 냉가슴 앓는 농민들
농민 신은학(58)씨도 겨우내 키운 양파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푸른 양파 줄기를 이리저리 눈으로 훑던 시선을 애써 먼 산으로 돌렸다.

지금쯤이면 양파 잎이 5개는 돼야 하는데 2∼3개가 전부였다.

수십 년의 '농사 구력'으로 이미 흉작을 예상했다.

양파 이랑 사이 쩍쩍 갈라진 고랑은 신씨의 타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양파 냉해 피해가 워낙 심해 김제시가 정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는데 몇개월 째 답이 없다"며 "어디에다 하소연할 수도 없는 농민들은 나날이 한숨만 늘어간다"고 토로했다.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익산, 정읍, 남원, 김제, 완주, 장수, 고창, 부안 등 8개 시·군에서 양파 냉해 피해가 접수됐다.

도내 전체 양파 재배 면적(1천566㏊)의 약 25%에 해당하는 402.4㏊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보면 피해는 익산이 125.3㏊로 가장 컸고 완주 82.4㏊, 장수 69.9㏊, 김제 50.2㏊, 남원 36.3㏊, 고창 14.5㏊ 등이 뒤를 이었다.

뿌리 활착이 일어나지 않고 고사하거나, 웃자라거나, 결주율(포기가 비어 있는 비율)이 높은 게 주요 피해 내용이었다.

최근에도 일교차가 컸던 터라 냉해 피해 면적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게 전북자치도의 설명이다.

전북자치도는 농촌진흥청, 전북농업기술원 등과 함께 현장을 조사하고 농가를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전북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지난해 말 날씨가 따듯하다가 갑작스러운 한파가 찾아와 양파 생육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시·군과 함께 양파 생육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육이 부진한 양파에 액체 비료를 직접 공급하거나 적기에 병해충 방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농가를 돕겠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