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영토 탓 미세 요소엔 무신경한 듯…서로 존중하는 세상 희망"
러 대선 참관 한국인 "투표함·기표 방법 모두 제각각"
러시아 대통령 선거를 참관한 문준일 원광대 교수는 균일화되지 않은 러시아 투표장 풍경이 이색적이었다고 19일(현지시간) 말했다.

문 교수는 지난 15∼17일 러시아 대선에 국제 참관인으로 참여해 제2차 세계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유명한 남부 볼고그라드의 선거를 지켜봤다.

한국인이 러시아 선거를 참관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이후 서방 제재에 동참하면서 러시아의 비우호국으로 지정된 상태지만 문 교수에게 뜻밖의 참관 제의가 왔다고 한다.

그는 연합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국제적으로 비판 받는 상황이고,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 정치사회 분야 전문가도 아니어서 고민이 됐지만 러시아인의 독특한 의식 세계와 문화에 대한 연구 욕심에 참관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한국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 러시아에서는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다"며 볼고그라드의 대선을 사흘간 지켜보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투명 투표함'이다.

러시아가 선거에서 투명 투표함을 사용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비밀 투표를 보장하지 못하는 엉터리 선거라는 비판이 나왔다.

러 대선 참관 한국인 "투표함·기표 방법 모두 제각각"
그런데 러시아 투표함은 투명할 뿐 아니라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구형·신형 등 제작 시기가 다르기도 하고 봉인 방식과 뚜껑 모양도 달랐다.

자세히 보면 투표함의 투명도도 조금씩 달랐다.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넣는 방법도 다양했다.

기표한 용지를 접어서 넣는 사람도 있지만 펼쳐서 넣는 사람이 더 많았다.

팩스처럼 투표용지를 밀어 넣으면 자동으로 투표수 집계까지 되는 전자 투표함을 사용하는 곳도 있었다.

기표 방식도 자유로웠다.

한국과 달리 러시아는 투표용지에 도장이 아닌 볼펜으로 기표하는데, 다른 후보 칸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동그라미(○), 엑스(X), 브이(V), 십자가(+), 삼각형(△) 등 다양한 표시를 모두 인정한다고 했다.

서방은 허술해 보이는 러시아 대선을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권 연장을 위한 조작과 부정선거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러시아 내부에서는 이렇게 제각각인 투표 환경을 문제시하는 목소리는 드물다.

러 대선 참관 한국인 "투표함·기표 방법 모두 제각각"
문 교수는 "한국의 엄격한 투표 환경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러시아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모습은 기본적인 규칙만 지켜지면 세세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러시아인들의 의식 구조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며 "광활한 공간이 생활의 기본조건이 되었던 그들에게는 그 공간을 만드는 들판·숲·강 같이 가장 큼직한 요소들이 중요하지, 그 속의 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문 교수는 전날 러 대선 국제 참관인 기자회견에 참석해 "새가 한쪽 날개로만 날 수 없듯이 세상은 하나의 논리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다른 논리의 조화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며 "이번 대선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세상을 위한 길을 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