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문제 우화처럼 쓴 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국내 출간
佛 최고권위 문학상 공쿠르상 심사위원…"문학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
프랑스 소설가·감독 클로델 "타인은 위기 아닌 기회"
"소설 쓰기와 영화 제작이 모두 서로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소설 쓸 땐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 놓은 시각적 이미지를 텍스트화하려고 노력하고, 영화 만들 땐 (이미지보다) 인물 간 대화와 대사를 중시해요.

"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필리프 클로델(62)은 자신의 가장 큰 직업적 정체성인 소설가와 영화감독이라는 두 분야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시너지를 일으켜 작업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했다.

클로델은 19일 서울 주한프랑스대사관 김중업관에서 장편소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 출간 간담회를 열고 인간 본성의 복잡성 등 자신이 천착해온 주제들에 관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섬'(은행나무)은 지중해의 한 가상의 화산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선과 악으로 양분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복잡성과 현대 국가공동체가 당면한 비극을 우화처럼 풀어낸 작품이다.

올리브 농사와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안온한 일상이 이어지던 섬은 어느 날 해변에서 신원미상의 흑인 청년 시신 세 구가 발견되면서부터 불신과 혼돈에 빠져든다.

작가가 연극, 동화, 추리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코드를 뒤섞어 2018년 프랑스에서 발표한 이 작품은 유럽 국가들이 난민들에 대처하는 방식과 인간의 공포, 이기심, 나약함 등의 어두운 면모를 예리하게 드러내 주목받았다.

소설은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발표됐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미지의 타인에 대한 공포가 극대화한 시점에 더 관심을 모았다.

"팬데믹 전에 썼지만, 팬데믹 후엔 타인을 잠재적 위협으로 보는 경향이 더 커졌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더 의미가 있을 겁니다.

타인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일 수 있어요.

프랑스도 이민자를 받으며 학문과 문학이 풍요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타인을 신뢰하기보다 두려워하기가 쉽지만 그런데도 믿음과 신뢰로 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선과 악 한쪽으로 재단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교사, 신부, 시장, 의사, 경찰 등 익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숭고한 이상주의자에서부터 타락한 위선자까지 어느 사회에나 흔히 있을 법한 다양한 개성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간 군상을 표상한다.

프랑스 소설가·감독 클로델 "타인은 위기 아닌 기회"
"인간 본성의 복잡함은 그동안 쓴 작품들의 중심 주제입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 이렇게 딱 갈라서 제시하고 싶지 않아요.

25년 전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에 품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은 누구나 선과 악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역사적이거나 지리적인 어떤 상황 때문에 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이죠."
클로델은 프랑스에선 소설가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영화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국내에도 그가 연출한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차가운 장미' 등이 개봉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도 볼 수 있다.

잔잔한 일상에 숨겨진 내밀한 이야기와 감정의 격랑을 예리하게 포착한 그의 작품들에는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 다니엘 오테유 등 일급 배우들이 다수 출연했다.

그의 영화들에선 연출자의 소설가적 시선이, 소설에선 영화 연출과 같은 기법상의 특징이 뚜렷이 읽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소설과 영화가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작업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소설가·감독 클로델 "타인은 위기 아닌 기회"
클로델은 또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아카데미 공쿠르 회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방한 기간에도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하는 공쿠르상 홍보 프로그램인 제2회 '공쿠르문학상-한국' 행사에 참여한다.

공쿠르상 심사는 엄청나게 많은 분량을 읽어내야 하지만 작가로서 매우 보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저를 포함해 심사위원이 10명입니다.

5월부터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해요.

그렇게 여름 내내 열심히 읽은 뒤 9월 초 심사위원들이 모여 15권 내외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문학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어요.

문학 독자가 프랑스에서도 줄고 있긴 해도, 공쿠르상이 발표되면 즉각 판매 부수가 급증하고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는 등 작가의 인생 자체가 바뀌지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