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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한민국 곳곳이 정치 이야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도 꽤 많다. 정치가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정치를 혐오하기도 한다. 이들은 정치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정치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벤 앤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정치무용론에 반대한다. 그 대신 양날의 칼로 정치를 바라본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이유에서다. 앤셀 교수는 ‘병을 주고 약을 주더라도’ 정치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는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치 말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앤셀 교수는 정치가 지켜야 할 가치로 민주주의, 평등, 연대, 안전, 번영 등 다섯 가지를 꼽는다. 책은 각각의 사항이 왜 중요하고 ‘덫’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책마을] 정치 혐오와 냉소가 불러오는 '5가지 재앙'
민주주의의 위기는 훌륭한 정치인의 선출이 보장되지 못하고 포퓰리스트들이 득세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 정상화를 돕는 대표적인 정치 수단으로 시민 모임을 제시한다. 다수결에만 의존하는 문제 해결 방식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시민 모임의 효과는 최근 아일랜드에서도 확인됐다. 아일랜드는 낙태법에 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기 전에 시민을 대상으로 토론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선 낙태를 허용하는 기간과 낙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 등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낙태 찬성 혹은 반대란 극단적인 양극화로 벌어지는 대신 중도적 입장으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다. 광범위하지만 무제한적이지는 않은 형태로 낙태를 합법화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합의를 도출해낸 것이다. 정보기술(IT) 발달로 시민 모임은 시공간 제약을 넘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다.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지점 가운데 하나는 정치가 어떻게 번영을 돕는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 상당수는 ‘자원의 저주’에 걸려 있다. 앤셀 교수는 정치가 무력해진 곳에서는 번영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정치가 힘이 없으면 지도자가 국가의 장기적 발전 대신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내리는 결정을 막을 수 없다. 정부가 땅에서 솟아나는 천연자원의 즉각적인 혜택에 주목하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법·교육·금융 시스템 구축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정치가 안정된 노르웨이 사례를 보자. 노르웨이는 1970년대 중반에 석유가 발견되기 전까진 이웃 나라인 스웨덴보다 훨씬 가난했다. 석유 발견이 시민을 더 잘살게 해줬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석유에 대한 강력한 통제와 과세 정책으로 지속적인 미래 투자 예산을 확보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모든 유전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기업 스타토일을 소유하고 있으며, 민간 에너지 기업에 수익의 78%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과세 과정이 투명하고 일관적으로 이뤄져 신뢰를 받고 있다.

노르웨이가 에너지로 벌어들인 수입은 집권당이나 왕의 지인들이 운영하는 음침한 금고가 아니라 국부펀드로 들어간다. 해당 펀드는 해외 시장에 투자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해 노르웨이 기업이 투자받기 위해 로비를 벌일 때 나타날 수 있는 부패나 이익집단의 알력을 피하고 있다.

저자는 정치가 부와 성장으로 연결되기 위해선 정치인들이 당장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려고 하는, 나아가 공공 자금을 유용하려는 단기적인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책의 제목은 정치의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정치 혐오나 냉소와는 철저하게 거리를 둔다. 그 반대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덫을 마주하며 항상 성공할 수는 없다. 종종 실수를 반복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를 포기하면 너무 과한 정치 혹은 너무 빈약한 정치가 우리를 미래의 꿈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정치가 왜 실패했는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미래의 정치가 성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