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의 종횡무진 경제사] 日 지폐 모델 '선수' 교체…한국선 언제쯤 과학자·근대 인물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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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끝) 지폐 속 '인물 한·일전'
20년 만에 일본 지폐 디자인 교체
'제일은행권 악연' 시부사와 등 대면해야
日선 근대 의학자·작가 꾸준하게 등장
韓은 특정 성씨·성별·기관에 집중
좌우대립 탓 근현대 인물 찾기 난항
인물 외에 조각상·건축물 대안 고려해야
20년 만에 일본 지폐 디자인 교체
'제일은행권 악연' 시부사와 등 대면해야
日선 근대 의학자·작가 꾸준하게 등장
韓은 특정 성씨·성별·기관에 집중
좌우대립 탓 근현대 인물 찾기 난항
인물 외에 조각상·건축물 대안 고려해야
일본의 국왕 얼굴은 몰라도 이 사람 얼굴은 다 안다. 작년만 해도 700만 명 가까운 한국인이 일본 여행을 가기 전 환전 창구에서 이 사람을 만났다. 1만엔권 지폐의 주인공인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후쿠자와 유키치다.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가자며 조선을 재촉하더니 갑신정변 주역의 가족들이 연좌제로 몰살당하는 것을 보고는 “이런 야만스러운 종족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병합에 동의한 사람이니 우리와 좋은 인연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심술맞아 보이는 이 사람 얼굴을 오는 7월부터는 보지 않게 됐다. 일본이 자국 지폐 인물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 온다더니 우리에겐 딱 그 꼴이다.
그 나라에서 뭐라 불리던 뭔 상관이냐고 할 문제가 아닌 게 이 사람은 대한제국 시기 발행된 제일은행권 앞면을 제 얼굴로 장식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제일은행은 외국 돈 유통을 금지한 대한제국을 압박해 제일은행 지폐를 유통시켰고 시부사와는 그 은행의 총재였다. 악연으로 엮여 있다 보니 일본이 근대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 셈이다.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지폐에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을 내세우면 된다. 이봉창은 일왕을 노렸고 윤봉길은 관동군 수뇌부를 반토막 냈으며 안중근은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러나 배려 없는 나라에 맞대응한다며 유치한 나라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발언하시는 분 있으면 뜯어말리시라. 현재 5000엔권과 1000엔권의 얼굴은 히구치 이치요와 노구치 히데요다. 겹치는 글자가 많아 헛갈리기 쉬운데 히구치는 작가, 노구치는 과학자다. 바통을 이어받을 인물은 쓰다 우메코와 기타자토 시바사부로다. 앞사람은 교육자, 후자는 의학자로 문과와 이과에서 고루 선발한 나름의 일관성 있는 교체다.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일본의 존중은 최근 생긴 유행이 아니다. 1921년 7월 일본의 한 잡지사는 당대의 과학 스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초청한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아인슈타인과 인연을 쌓은 일본의 과학 인맥이 총동원됐고 그가 아직 노벨상을 받기 전이어서 방일은 어렵지 않게 성사된다.
대박이 터진다. 같은 해 11월 아인슈타인이 일본으로 오는 배 위에서 노벨상 수상 통지를 받은 것이다. 잡지사 입장에서는 거저 주운 거나 다름없었다. 일본에서 아인슈타인의 인기는 엄청났다. 지금 가치로 40만원이 넘는 고가의 강연회 입장권이 1만4000장이나 팔려나갔다. 일본이 과학에 열광하는 동안 조선은 뭐 했느냐 자괴감 느끼실 필요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 일정을 우리 언론은 실시간으로 보도했으며 민립대학 설립을 준비하던 ‘조선교육협회’는 아인슈타인을 초청하기 위해 일본에 인력을 급파했다. 동아일보는 4회에 걸쳐 상대성이론을 자세하게 소개하며 아인슈타인 열풍을 선도했는데 지금 읽어봐도 설명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조선교육협회의 아인슈타인 섭외는 성공하지 못했다. 초청 비용도 일정도 예전의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다. 대신 조선은 1923년 유학생 과학도를 동원해 부산에서 평양까지 전국에서 상대성이론 강연회를 개최했다. 꿩 대신 닭이었던 이 세 시간짜리 강연회에는 수천 명이 몰렸고 상대성이론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 됐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껏 지폐에 등장한 인물은 모두 여섯 명이다. 신사임당을 빼면 다섯 명이 남성인 동시에 이(李)씨다. 여섯 명 중 넷은 성균관대 관계자로 학생, 교수, 학부모, 이사장이다. 성별로 보나 특정 기관 관련으로 보나 완전히 몰아주기다. 지폐 앞면에 제일 먼저 등장한 사람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다. 제1공화국 시절 8종의 지폐에 모두 들어가 있던 대통령의 초상은 하야와 운명을 같이했다. 조폐공사가 1956년 발행한 500환권에는 이승만 초상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게 2년 뒤 새로 발행된 같은 액수 지폐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어떻게 용안(龍顔)을 접히게 할 수 있느냐는 권력층의 요구 때문이었다는데 쓰면서도 참 믿기 어렵다.
세종대왕 초상은 1960년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처음 지폐에 등장했고 이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현재까지 롱런 중이다. 우리도 이제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쉽지 않다. 세계관이 좌우로 갈려 상대 진영의 영웅들을 죄다 깎아내리는 바람에 근현대 인물 중엔 후보가 없다. 다행히 주요국 지폐 앞면 도상은 20%가 인물이 아니라 조각상, 건축물이다. 그런 방향으로는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친다. 제호를 까다롭게 지어주시는 바람에 쓰는 내내 머리에 쥐가 났다. 연재하는 동안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큰절 한 번 올린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
그래서인지 왠지 심술맞아 보이는 이 사람 얼굴을 오는 7월부터는 보지 않게 됐다. 일본이 자국 지폐 인물을 전면 교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다. 여우 피하니 호랑이 온다더니 우리에겐 딱 그 꼴이다.
그 나라에서 뭐라 불리던 뭔 상관이냐고 할 문제가 아닌 게 이 사람은 대한제국 시기 발행된 제일은행권 앞면을 제 얼굴로 장식한 인물이다. 당시 일본 제일은행은 외국 돈 유통을 금지한 대한제국을 압박해 제일은행 지폐를 유통시켰고 시부사와는 그 은행의 총재였다. 악연으로 엮여 있다 보니 일본이 근대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에게는 스트레스가 되는 셈이다.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지폐에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을 내세우면 된다. 이봉창은 일왕을 노렸고 윤봉길은 관동군 수뇌부를 반토막 냈으며 안중근은 ‘동양의 비스마르크’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그러나 배려 없는 나라에 맞대응한다며 유치한 나라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혹시라도 주변에 이런 발언하시는 분 있으면 뜯어말리시라. 현재 5000엔권과 1000엔권의 얼굴은 히구치 이치요와 노구치 히데요다. 겹치는 글자가 많아 헛갈리기 쉬운데 히구치는 작가, 노구치는 과학자다. 바통을 이어받을 인물은 쓰다 우메코와 기타자토 시바사부로다. 앞사람은 교육자, 후자는 의학자로 문과와 이과에서 고루 선발한 나름의 일관성 있는 교체다. 과학과 의학에 대한 일본의 존중은 최근 생긴 유행이 아니다. 1921년 7월 일본의 한 잡지사는 당대의 과학 스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초청한다. 독일과 스위스에서 아인슈타인과 인연을 쌓은 일본의 과학 인맥이 총동원됐고 그가 아직 노벨상을 받기 전이어서 방일은 어렵지 않게 성사된다.
대박이 터진다. 같은 해 11월 아인슈타인이 일본으로 오는 배 위에서 노벨상 수상 통지를 받은 것이다. 잡지사 입장에서는 거저 주운 거나 다름없었다. 일본에서 아인슈타인의 인기는 엄청났다. 지금 가치로 40만원이 넘는 고가의 강연회 입장권이 1만4000장이나 팔려나갔다. 일본이 과학에 열광하는 동안 조선은 뭐 했느냐 자괴감 느끼실 필요 없다.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 일정을 우리 언론은 실시간으로 보도했으며 민립대학 설립을 준비하던 ‘조선교육협회’는 아인슈타인을 초청하기 위해 일본에 인력을 급파했다. 동아일보는 4회에 걸쳐 상대성이론을 자세하게 소개하며 아인슈타인 열풍을 선도했는데 지금 읽어봐도 설명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조선교육협회의 아인슈타인 섭외는 성공하지 못했다. 초청 비용도 일정도 예전의 아인슈타인이 아니었다. 대신 조선은 1923년 유학생 과학도를 동원해 부산에서 평양까지 전국에서 상대성이론 강연회를 개최했다. 꿩 대신 닭이었던 이 세 시간짜리 강연회에는 수천 명이 몰렸고 상대성이론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소양이 됐다.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이제껏 지폐에 등장한 인물은 모두 여섯 명이다. 신사임당을 빼면 다섯 명이 남성인 동시에 이(李)씨다. 여섯 명 중 넷은 성균관대 관계자로 학생, 교수, 학부모, 이사장이다. 성별로 보나 특정 기관 관련으로 보나 완전히 몰아주기다. 지폐 앞면에 제일 먼저 등장한 사람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다. 제1공화국 시절 8종의 지폐에 모두 들어가 있던 대통령의 초상은 하야와 운명을 같이했다. 조폐공사가 1956년 발행한 500환권에는 이승만 초상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게 2년 뒤 새로 발행된 같은 액수 지폐에는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어떻게 용안(龍顔)을 접히게 할 수 있느냐는 권력층의 요구 때문이었다는데 쓰면서도 참 믿기 어렵다.
세종대왕 초상은 1960년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처음 지폐에 등장했고 이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현재까지 롱런 중이다. 우리도 이제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쉽지 않다. 세계관이 좌우로 갈려 상대 진영의 영웅들을 죄다 깎아내리는 바람에 근현대 인물 중엔 후보가 없다. 다행히 주요국 지폐 앞면 도상은 20%가 인물이 아니라 조각상, 건축물이다. 그런 방향으로는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번 회로 연재를 마친다. 제호를 까다롭게 지어주시는 바람에 쓰는 내내 머리에 쥐가 났다. 연재하는 동안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큰절 한 번 올린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남정욱 前 숭실대 예술학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