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김밥 가격이 표시된 서울 중구의 한 김밥전문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시민이 김밥 가격이 표시된 서울 중구의 한 김밥전문점 앞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천의 공장 밀집지역 인근 식당 골목. 한 김밥집 벽면 메뉴판 야채김밥 가격이 2400원에서 2900원으로 수정돼 있었다. 참치김밥이나 치즈김밥은 2900원에서 3400원으로, 이달 들어 김밥 가격을 500원씩 올렸다.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나 택시기사, 알뜰 직장인들이 부담 없이 한 끼를 해결하는 곳이었지만 2000원대 김밥은 사라지다시피했다.

이 일대에서 20년째 김밥 장사 중이라는 한 가게 주인은 “김부터 계란, 채소까지 식재료 값이 모조리 급등했다”며 “손님들도 ‘버틸 만큼 버텼다’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김 값만 해도 72속짜리(1속당 100장) 한 박스가 올 초 50만원대에서 최근 70만원 넘게 뛰고 시금치·오이·깻잎 같은 채소 값도 많게는 두 배씩 올랐다. 속재료가 많아 원가율을 줄이기 쉽지 않고 인건비, 전기세, 월세까지 내면 남는 게 별로 없다”고 푸념했다.

이 가게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하루 두 명씩 돌리던 종업원을 한 명으로 줄이고 주인이 직접 근무하는 시간을 하루 5시간 늘렸다고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물가 상승이 서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김밥집까지 직격하고 있다. 원재료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던 김밥집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채소, 김, 식용유, 참기름 등 김밥집에서 쓰는 식재료 값이 치솟으면서 경영이 악화한 식당들은 아예 문 닫는 추세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서민들로선 한 끼 해결하기가 더 팍팍해졌다. 택시기사 왕모 씨(62)는 “이곳저곳 일을 다니다가 간단히 한 끼 떼우러 김밥집을 들르면 3000원짜리도 흔하지 않다”며 “손님도 줄었는데 큰일”이라고 말했다.

7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김밥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5.90(2020=100)으로 전년 대비 8.6% 상승했다. 김밥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당시 전년 대비 상승률이 2.8%였으나 2021년 4.8%, 2022년 10.7%에 이어 지난해 8.6% 상승해 최근 3년간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작년 외식물가 품목 중 피자(11.2%), 햄버거(9.8%) 다음으로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인 메뉴이기도 하다.

서울 지역으로 한정하면 김밥 한 줄 가격(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 기준)은 3323원이었다. 김밥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최근 들어 식자재·공과금 인상 여파가 커지면서 메뉴 인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KOSIS 기준으로 지난달 농산물 가운데 채소류 물가지수가 작년 같은 달과 비교해 12.2%나 올랐다. 지난해 3월(13.8%)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 김밥의 주재료인 시금치(33.9%), 오이(12.0%), 깻잎(11.9%) 등이 1년 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 김 도매가도 역대 최고치 수준으로 치솟았다.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에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음식점에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스1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가격 인상을 고민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김밥을 3000원대에 팔고 있는데 이제는 4000원까지 올려야 할 것 같다’ ‘김밥 가격을 차마 못 올리진 못하겠고 곁가지 메뉴 가격이라도 올려야 할 것 같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김밥이나 라면 메뉴 가격을 당장 올리기도 쉽지 않다. 프랜차이즈 분식점의 경우 김밥 가격이 5000~8000원에 이른다. 서울 마포구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이모 씨(56)는 “김밥은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커 가격을 몇백원만 올려도 불쾌해하는 손님들이 많다”고 토로했다.

아예 김밥 장사를 접는 경우도 늘었다. 기상 악화가 지속하면서 채소 가격 상승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가 임금 인상 부담까지 겹치면서 저가 메뉴로 승부하던 식당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편의점 등 김밥집을 대신하는 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것도 폐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번화가, 골목상권을 가리지 않고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김밥 프랜차이즈는 이미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다.

대표적 프랜차이즈인 김가네의 경우 2022년 매장 주인이 바뀌는 명의 변경이 34개로 전년(24개) 대비 41.6% 늘었다. 계약을 종료한 가맹점도 10개로 전년(7개)보다 42.5% 증가했다. 또다른 김밥 판매점인 고봉민김밥인도 가맹본부나 가맹점주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는 계약 해지가 늘면서 2020년 591개에 달하던 전국 매장이 2022년 534개로 57개 줄었다.

서울 여의도의 한 김밥가게 자영업자는 “경기가 너무 안 좋고 각종 수수료 부담에다 원재료 값도 많이 올라 수익이 떨어지고 있다. 매장을 유지하기 부담스럽다”고 귀띔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