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P, 리오틴토, 글랜코어 등 주가 일제히 하락
중국 경기 둔화로 원자재 가격↓
위기이자 기회였던 친환경 전환...위기만 남아


글로벌 원자재 대란으로 호시절을 보낸 광산 기업들이 주춤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 정점을 찍은 광산기업들의 주가는 일제히 내림세로 돌아섰다. 2022년부터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 올린 뒤 리튬과 니켈·코발트 등 친환경·전기차 관련 광물 시세가 폭락했고, 여파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유럽 경기 둔화도 본격화하면서 알루미늄과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 전반으로 하락세가 번져 기업들의 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기업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한 원가 절감을 추진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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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 원자재 호황 끝나나

8일 뉴욕 증시에서 세계 최대 광산 기업인 호주 BHP 주가는 올들어 15.62% 내린 57.3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BHP는 철광석과 제철용 석탄을 비롯해 구리와 니켈 등이 주력이다. 브라질 철·니켈 광석 기업 발레도 뉴욕증시서 13.19달러로 거래되며 연초에 비해 16.4% 내렸다. 글로벌 철강 수요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건설업이 침체에 빠지면서 전망이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BHP는 작년 하반기에 전년 대비 6% 증가한 272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순이익은 9억27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64억6000만 달러에 비해 85%가량 급감했다. BHP는 발레와 함께 과거 안전사고 관련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는 등 악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브라질 법원은 지난 1월 BHP와 발레의 합작사 사마르코는 주민과 지역 정부 등에 97억달러(약 476억헤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2015년 11월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주 마리아나 마을 인근의 폐석 댐이 무너지면서 산사태가 발생해 19명이 사망하고 마을을 파괴하는 사고가 난 데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BHP와 발레는 이 뿐만 아니라 영국 법원에 제기된 집단소송에도 직면하게 됐다. BHP는 지난달 사마르코 댐 붕괴 사고와 관련해 추가로 32억 달러의 충당금을 장부에 반영했다.

BHP는 서호주 니켈 사업 부문에서는 25억달러를 손상 처리했다. 니켈값이 45%가량 폭락하면서 낮아진 광산의 가치를 재무제표에 반영한 것이다. 니켈 가격 침체 장기화가 예상되는 등 올해 실적 전망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는 얘기다. 인도네시아산 니켈이 쏟아지는 가운데 니켈을 사용하지 않는 인산철리튬(LFP) 배터리에 대한 중국 업체들의 선호 현상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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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상장된 리오틴토 역시 이날 증시에서 119.89호주달러(약 79.36달러)를 기록하며 연초 대비 12.21%나 내렸다. 철광석을 비롯해 구리 알루미늄 리튬 광석 사업을 하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2위 광산기업인 리오틴토는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도 대비 19% 감소한 100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미국과 유럽의 수요 감소에 따른 알루미늄 가격 하락 때문이다. 피터 커닝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구리와 알루미늄 등의 이익이 줄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인 철광석 사업 부문의 실적은 꾸준하다"고 설명했다.

글랜코어도 연초 대비 14.51% 하락한 400.71파운드(약 514달러)로 런던 증시에서 거래됐다. 2022년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반토막 났기 때문이다. 석탄과 니켈 가격이 하락한 게 주원인으로 지목된다.

부담 커지는 친환경 탄소배출 저감 비용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넉넉한 이익을 챙길 때와 달리, 친환경 탄소중립을 위한 비용도 광산기업들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3년 전까지는 리튬, 니켈, 구리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 관련 금속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광산기업들도 자신의 탈탄소 전환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기업들은 앞다퉈 광석 운반 차량을 전동화하는 등의 탄소배출 저감 대책을 내놨다. 지난 2월, BHP는 석유기업 BP와 협력해 서호주 야디 철광석 사업장의 광산 작업용 발전 시설에 수소 처리된 식물성 기름(HVO)을 시험 사용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리오틴토는 지난 1월 퀸즐랜드주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알루미늄 사업장에 쓸 전기를 공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상승하는 인건비와 각종 제반 비용 때문에 친환경 투자 여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BHP의 경우 호주의 일부 사업장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등의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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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기술 동원, 위기 극복 나서

광산 업체들은 첨단기술 도입해 인건비 등 비용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드론은 이미 2017년부터 호주 금광에서 운영되고 있다. 최신형 드론들은 고화질 카메라와 열화상 장비 뿐만 아니라 라이다(LIDAR·빛 감지 및 거리 측정)를 갖추고 있다. 드론은 위성항법장치(GPS) 없이도 레이저 맵핑 시스템을 활용해 센티미터 단위로 광산의 3차원 지도를 생성해 낸다. 미국 콜로라도의 한 광산에선 2개월 동안 찾지 못하던 광산의 막힌 부분을 드론이 10분만에 찾아내기도 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원격 모니터링 기술도 도입하고 있다. 굴삭기와 트럭, 드릴러를 비롯해 지원 장비 등 광산 내 모든 이동 장비를 모바일 장치와 센서를 통해 모니터링 한다.

경기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다. 게리 네이글 글랜코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현재 거시경제 환경은 어렵지만, 올해가 글로벌 경기의 바닥일 것으로 예상한다"며 "예상되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공급망 정비로 올해 말 서방 국가들의 원자재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