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대 증원 방침과 전공의 징계 움직임 등에 반발
환자 감소한 병원들은 장기화 대비해 병동 통폐합·휴직 권고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17일째 진료 현장을 떠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등 집단행동…'출구 없는 대치'(종합)
의대 교수들은 의대 신입생 증원에 반발하며 공동 성명을 내거나 심지어 단체로 사직서까지 제출하며 집단행동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국 병원들은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로 수술 건수가 크게 줄면서 입원환자가 급감하자 병상을 줄이거나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등 매출 감소에 대응하고 있다.

◇전공의 복귀 요원한데…전문의·교수들까지 집단행동
대전 5개 주요 대학·종합병원과 천안지역 대형병원(단국대·순천향대병원)의 경우 2명을 제외하고 복귀한 전공의가 없는 가운데, 오히려 사직자가 늘면서 의료공백이 심해지고 있다.

천안 단국대병원에서는 전날 전공의 2명이 추가로 사직서를 제출, 사직 인원이 109명(전체 148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그동안 정상적으로 진료를 해 왔다.

인천지역 수련병원 전공의 상당수도 의료현장에 복귀하는 대신 재계약을 포기하고 있다.

인천시는 11개 수련병원의 전체 전공의 540명 중 360명(66.6%)이 근무지를 이탈하고 199명(36.8%)이 계약을 미체결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대 강의와 함께 병원 진료를 겸하는 교수들마저 의대 신입생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전선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충북지역 유일의 상급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은 전공의 151명 중 149명이 병원을 이탈한 데 이어 최근 심장내과 교수까지 사직서를 제출했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등 집단행동…'출구 없는 대치'(종합)
해당 교수는 SNS를 통해 "전공의 선생님들이 사직하고 나간다는데 이를 막겠다고 면허정지 처분을 하는 복지부나 생각 없이 의대 정원 숫자를 써내는 대학 총장들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며 "동료들과 함께 진료를 이어 나갈 수 없다면 동료들과 함께 다른 길을 찾도록 하겠다"고 사직의 변을 밝혔다.

충북대학교 의과대학·충북대병원 교수들이 모인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후 병원 인재관에서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의학교육'이 적힌 근조 리본을 단 비대위원 5명은 "사직한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이 개인에게 전달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단은 사직 외에 없을 것 같다"며 "다만 정부 의료정책이 정상화될 때까지 국민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주어진 의료 현장에서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의대 교수협 비대위는 이날 이번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표명하기 위해 총회를 열고 구체적인 단체행동 착수 여부와 형태 등을 결정할 예정이다.

이들은 사직서 제출과 겸직 해제뿐 아니라 정부를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학장단은 이날 대학본부의 '의대 증원 신청'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전원 사퇴서를 제출했다.

정연준 학장은 사퇴서를 제출하며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11월 대학본부가 제시한 '100%(93명) 증원' 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 규모를 반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난번과 같은 수를 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등 집단행동…'출구 없는 대치'(종합)
정 학장은 그러면서 "100% 증원은 주요 의과대학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전원 휴학 및 유급의 사태를 막을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예과 1학년은 전원 유급이고 내년에는 현 정원의 3배수가 동시에 수업받아야 하기에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상국립대 의대도 전날 보직 교수 12명 전원이 '보직 사직원'을, 보직이 없는 교수 2명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광대 의대 교수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집단행동 가능성을 내비쳤다.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역시 성명을 통해 "수련의, 전공의, 의대생의 피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사태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환자없는 병원' 병동 통폐합에 무급 휴가도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가운데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병원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다.

전남대병원은 전날 입원 환자가 급감한 2개 병동을 폐쇄하고 해당 병동 의료진을 응급·중환자실과 필수의료과 등에 재배치했다.

폐쇄된 병동은 성형외과와 비뇨기과 병동으로 해당 과 병동은 응급·중증환자가 거의 없어 병동도 거의 비어 있었다.

병원 측은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병동 간호사 등을 중심으로 의료 인력을 재배치해 전공의와 전임의 공백으로 인력난을 겪는 응급·중환자실과 필수의료과를 지원하도록 할 방침이다.

부산대병원도 유사 진료과끼리 병동을 통합 운영하기 시작했다.

현재 50개 병동 가운데 6개 병동이 비어 있는 상태다.

동아대병원은 이미 응급실 병상을 40개에서 20개로 축소해 운영 중이다.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서 등 집단행동…'출구 없는 대치'(종합)
환자와 수술 건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간호사들의 연차 사용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원래 간호사들은 업무 강도가 높아 연차를 쉽게 쓰지 못했다"며 "수술방에 들어가는 간호사 등 업무량이 줄어든 의료진에 대해 연차를 소진하라고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을지대병원도 내과와 정형외과 일부 병상을 폐쇄·축소 운영하는 한편, 지난 4일부터 간호사를 대상으로 무급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건양대병원도 간호·행정·의료기사 직군을 대상으로 연차휴가 사용을 권고했다.

전체 전공의 중 94%가 이탈한 제주대병원도 간호·간병서비스통합병동을 2개에서 1개로 통폐합했다.

또 이번주 중 내과 중환자실 운영 병상수를 20개에서 12개(내과 8·응급 4)로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진료하는 의료진을 지키고 병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금을 긴급수혈한다.

강원도는 강원대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강릉아산병원 4곳에 재난관리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긴급지원금은 이탈한 전공의들을 대신해 당직 근무에 투입된 의료진들에게 당직 수당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현장을 지키며 도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버텨주고 있는 의료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번 기금이 피로 누적과 의료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남은 의료진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조속히 이번 사태가 종료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박철홍 박주영 천경환 강태현 박세진 장지현 김솔 신민재 나보배 노승혁 박성제 박정헌 백나용 기자)
dragon.

/연합뉴스